흔히들 겉과 속이 달라 그 의중을 헤아리기 어렵고 음흉하게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을 가리켜 '능구렁이 같다'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능구렁이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저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속성을 표현하기에는 이만한 비유가 또 없다.
음흉한 간계와 권모술수가 활개치는 인간계, 그 중에서도 정치판은 능구렁이같은 자들로 넘쳐나는 살벌한 이전투구의 장이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짓말은 기본이고 온갖 비열한 술책이 구더기처럼 들끓는다. 인간미라고는 손톱만큼도 기대할 수 없는 비정한 이익집단의 결정체가 바로 정치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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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살벌하고 비열한 대한민국 정치판에는 애시당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보수세력에게는 공공의 적이었고(이어야만 했고) 진보세력에게는 이단아로 취급받으며 물어 뜯겼다. 특히 두번이나 연거푸 정권을 내준 보수세력은 그의 말투 하나하나까지도 문제삼으며 노무현 죽이기에 올인했다. 한나라당과 공생관계인 보수신문들은 악마의 편집술을 십분활용하며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보도에 사활을 걸었고, 정치인들은 뒤에서 슬그머니 군불을 땠다.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노무현은 사사건건찢기고 채이며 '나쁜 대통령'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갔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노무현 탓'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시중에 유행처럼 번질만큼 그는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었고, 가장 만만한 화풀이 상대였다.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현재진행형 중에 있고 무엇보다 개별주체들의 가치판단에 속한 영역이지만 나는 그것들 중 상당수는 매우 부당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능구렁이같은 음흉하기 그지없는 간계들이 노무현이라는 인간에게 덧씌워져 악용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은 대한민국 정치의 비루함이 만들어 낸 희생제물이나 다름이 없다. 안타까운 것은 그에게 드리워진 악의적 사술이 재임 중에도, 퇴임 후에도, 심지어는 서거 이후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기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이보다 부당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정치에 입문한 이후 줄곧 노무현 죽이기에 앞장 서왔던 홍준표 경남지사는 2일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경남의 절대군주인 그가 김해를 가든, 진주를 가든, 남해를 가든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추석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배하기 위해 왔을 뿐이라며 다른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는 그의 이번 참배는 여러가지로 의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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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모두가 익히 알다시피 그는 노무현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노무현 저격수'라는 별칭이 따라 다녔다. 그런데 그의 저격은 언제나 오발탄이었다. 그의 폭로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의 비루함은 정치적 폭로의 사실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에 있다. 대중들의 뇌리에 남는 것은 어차피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홍준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집요하고 악랄하게 노무현의 이름을 꺼내고 또 꺼내 들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거하게 될 사저를 '아방궁'이라 표현했고, 차명계좌와 관련해서는 "청와대에서 차명계좌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 (조현오를) 임명한 것 아니겠는냐"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돈 받아 정치하는데 많이 사용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개인적 사익으로 뇌물을 받았으니 전두환 노태우 보다 더 나쁘다"며 희대의 학살자들과 비교하는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기자들을 향해 "그 사람이 자기 정치 하다가 자기 성깔 못이겨 그렇게 가신 분"이라며 대놓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모두 대중들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십분활용하는 홍준표의 대중선동가로서의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대중을 선동하는 그의 저의에 있다. 대한민국 정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과정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천박하다는 데에 있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시쳇말로 너무도 치졸하고 저렴하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반칙과 거짓말도 마다하지 않고, 각종 편법과 불법이 동반된 음해와 공작이 난무하며, 이를 위해 금도를 넘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사회정의와 공의, 합리와 이성 같은 가치중립의 개념들 마저 언제든 탈중립의 지극히 사적인 개념으로 탈바꿈시켜 버린다. 가치전도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 급기야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 할 수 있는 책임윤리 마저 스스로 거세시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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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지사의 족적이 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정치적 입장이야 반대 입장에 있어 달랐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훌륭한 대통령입니다"라는 소회를 노무현에 대한 홍준표의 뒤늦은 각성에서 비롯된 진심으로 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에 대한 홍준표의 저격이 사회공익적 측면이 아닌 정치적 권모술수의 차원이었다는 것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졌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앞서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천박하고 비열한 공작정치, 영악하기 그지없는 대중선동정치로 고인에 대한 명예를 훼손시켰다면 이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그는 천상 정치인이다.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대신 특유의 비릿한 처신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능구렁이도 이런 능구렁이가 또 없다.
그의 갑작스런 봉하행에 말들이 많다. 대선을 염두해 둔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고, 추석을 앞두고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측면이라는 해석도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욕보이는데 누구보다 앞장 섰던 그가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다시 꺼내든 것에 대한 불쾌함과 분노다. 책임윤리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표리부동한 선동가의 조문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 이는 사람을 금수와 구별짓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것 중의 하나다. 이 기본적인 것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이는 정말이지 서글픈 일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