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강기정 의원은 며칠 전 국무총리실 주최로 지난 5월25일과 6월8일 열렸던 '세월호 수습 관계차관회의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진상조사 및 보상 특별법 제정안을 마련 중이며, 6월 초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세월호특별법의) 6월 국회 통과를 정부가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의원입법'이란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행정부가 입법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부가 '의원입법'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것은, 당시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조속한 사건 수습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입법으로 가면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보상조치를 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맞출 수 없어 좀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의원입법으로 추진하는 걸로 조정이 됐다"는 해양수산부 담당 공무원의 발언은 정부의 당시 입장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는 7·30 재보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의원입법'을 해서라도 세월호특별법이 빠르게 통과되길 원했던 정부의 입장은 그 이후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 국회에서 여야가 해결할 일이라며 돌변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애가 타는 유가족이 간곡히 면담을 신청해도,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도 박 대통령과 정부는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박 대통령과 정부는 '경제'와 '민생'이라는 강력한 환기제를 꺼내들며 여론을 호도하기에 앞장 섰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관련 법안 30개가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야당을 압박하는 한편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세월호 참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만약 경제활성화 법안 통과로 경기가 활성화되고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지고, 이 지독한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면 박근혜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도 해보지 못한 신기원을 이룩하는 쾌거를 달성하게 된다. 전 세계가 이 놀라운 기적을 대서특필할 것이고 한국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활성화 방안을 자국의 불황탈출을 위한 경제모델로 활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2014년 혹은 2015년 노벨경제학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군에 '최경환'이란 이름 석자가 놓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저들의 주장대로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주술처럼 읖조리고 있는 '경제'와 '민생'은 현 정권 뿐만 아니라 전 정권이었던 이명박 정권에서도 즐겨 사용되던 습관적인 수사였다. 무려 7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경제'와 '민생'을 독점 사용해 왔음에도 여전히 국내의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서민의 '민생'마저 회복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 사용하는 주체들의 무능력은 물론이고 그 의도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내세우고 있는 30개 법안 중 △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 의료법 △ 의료기기법 △ 주택법 △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폐지법 △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법 △ 마리나항만 조성 및 관리법 △ 경제자유구역특별법 △ 관광진흥법 △ 국가재정법 △ 조세특례제한법 △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 소득세법 개정안 △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 클라우딩 컴퓨터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이 도대체 박 대통령과 정부가 말하고 있는 민생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계류 중인 30개 법안의 대부분이 규제완화 법안들이고 그것도 대기업과 부자들만 혜택을 보게 되는 관련 법안들이다. 이 법안들이 대다수 서민의 경제여건에 어떤 도움을 준다는 것이며, 도대체 어떤 희망을 준다는 것인가.
현실성 없는 상상은 망상이고, 아무런 근거없는 터무니 없는 말들은 '유언비어'에 불과하다. 그렇게 본다면 최근 규제개혁장관회의나 수석비서관 회의 등을 통해 경제활성화를 위한 관련 법안의 국회통과를 압박하며 마치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만사가 해결될 것처럼 유언비어를 유통시키고 있는 박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금 지독한 망상, 그것도 대단히 위선적인 망상에 빠져 있는 중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
언급한 것처럼 박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와 '민생'을 언급하며 대기업과 재벌, 기득권을 위한 경제관련법안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속내는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대한 여론이 비등해지자 박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새누리당이 합세해 장외투쟁에 나서고 있는 야당을 압박하는 한편 세월호특별법에 쏠려 있는 국민여론을 분산시키기 위한 출구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지금은 관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며 국민에 대한 우민화를 서스럼없이 주도하던 박정희의 유신시절도 전두환의 5공시절도 아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정부정책의 옳고 그름 정도는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세상이다.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태도를 보면 국민에 대한 기만과 우롱이 도를 넘었다는 생각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4일 만의 일이었다. 대통령은 이날 너무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이번 참사의 최종책임은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개혁을 이루어 내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혁을 이루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근본부터 바꾸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특검과 특별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특검을 통해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눈물까지 흘려가며 20여분 동안 진행된 이날 담화의 내용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세월초 참사의 최종 책임자라며 책임을 통감한다던 대통령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고,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한 개혁과 대변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특별법 역시 언제 처리가 될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조차 난망한 상태다. 세월호 참사는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해결해야 할 우리 시대의 비극이며 자화상이다. 박 대통령이 담화문을 통해 고백했듯이 세월호 참사에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구조적 모순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무려 4개월,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단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싸늘하게 식어버린 대통령의 마음과 정부여당의 태도가 전부다. 저들의 무심함과 비정함, 그 얼음장같은 마음이 섬뜩하도록 시리고 또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