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개 노동자 김영오에게 자행되는 언론의 만행. 이것이 정상적인 국가인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목사였던 부친의 영향에다가 19세기 당시 네덜란드 영세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그를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그만큼 그는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줄 아는 성품을 타고 났다. 그가 신학 공부를 하고 전도사가 되어 자청하여 찾아간 곳은 탄광촌이었다. 그의 스케치나 유화로 잘 표현된 당시 탄광의 처절한 가난은 상상을 절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최고의 복지국가 중 하나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네덜란드의 형편을 본다면 불과 백년 사이에 천지가 개벽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흐는 탄광촌에서 너무 성실하게 선교활동을 하다가 탄광촌 영세민들을 선동할까 두려워한 교단의 수구주의자들 때문에 축출되었다. 그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렇게 된 것이다.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수구주의자들은 주장한다. 5천 년 가난을 극복한 혁명적 쿠데타 운운. 말도 안 되는 소리. 조건 없이 정치선동에 놀아나는 홍위병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한국인들은 무지랭이 무식꾼들이 아니다. 거의 모두가 글자를 깨우쳤고 책을 읽을 수 있다. 세상 도처에 널린 것이 책이고 요즘은 인터넷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어떻게 5천년 가난이라는 한심한 주장을 할 수가 있는 것인가? 당장 5천 년 동안 가난하지 않았던 국가나 민족이 있으면 대 보라! 대답이 궁할 것이다.
1,800년대 후반에 고흐가 그렸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올까? 식구들이 둘러 앉아 감자 서너 알로 끼니를 때우는 비참한 모습이 거기에 있다. '석탄 줍는 사람들'의 처절한 생활상을 그린 그림을 보고도 냄새나는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까? 천재적인 문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조지 오웰이 극심한 가난에서 얻은 폐병으로 요절한 20세기 초반의 실정을 모르고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지배세력과 수구세력을 제외한 인류의 대부분은 5천년 동안 가난 했고 세계적으로 지금도 가난에 시달리는 인구가 대부분이다. 인도, 필리핀,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방글라데시, 미얀마, 인도, 인도네시아 등등의 서민들 형편을 보라. 한국의 영세서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라. 오늘도 전철을 타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의 노인들과 파고다 공원 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인들의 현실을 보라. 한 달 20만원 주겠다던 기초 노인연금은 사실상 담배 값 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 핑계 저 핑계로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이 현실 아닌가. 서민들의 가난은 결코 구제되지 않았고 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
쿠데타로 세상이 바뀌고 혁명이 나서 바뀌고 정권이 교체되어 바뀌어도 인간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교활한 정치이념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지난 인류역사가 증명한다. 정치권력과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세상의 현실이 쉽게 바뀔 까닭이 없다. 요컨대 수구 지배세력의 각성과 혁신 없이 이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페어 플레이 정신이 없이는 될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먼저 이 세상 모든 수구 찌라시들의 혁신과 각성이 있어야 한다. 지성과 이성이 없는 언론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참담한 세상일 뿐이다.
일개 노동자로 한창 자라던 딸자식을 잃고 44일간의 초인적인 단식을 한 김영오씨의 주장은 대 참사의 원인을 본질적으로 파헤쳐 이 한국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꾸어 보자는데 있었다. 정부여당이 내 세우던 국가 개조까지는 아니더라도 혁신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진정성은 간데없고 역풍과 비난이 시작 되었다. 처음부터 정치권력과 찌라시들이 반발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납작 엎드려 있다가 지난 보궐선거의 대 승리로 일제히 몸을 일으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을 유족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줄 것 같이 하다가 태도가 돌변하였다. 세월 호 국정감사의 파행을 보면 모르겠는가? 새누리당은 지엽말단적인 이유를 핑계로 사실상 국감을 무력화 시켰다. 관계가 있고 책임이 있는 자들은 아무도 청문회에 나와서 증언하지 않았다. 청문회 자체가 무산된 것이다.
루쉰은 일찍이 1차 신해혁명 때 수구 기득권주의자들의 본질을 간파하였다. 납작 엎드려 있던 그들이 기회를 틈타 일제히 몸을 일으켜 혁명가들을 때려죽일 것을 알고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에세이로 거대한 중국 국토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불민한 중국 대중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도 몰랐다. 알만한 작자들은 기득권자들이거나 무력한 지식인들뿐이었다. 결국 세상은 그의 경고대로 되었다. 물속의 빠진 미친개를 구해 주면 반드시 물에서 기어 나와 사람을 물어 죽인다는 루쉰의 경고대로 된 것이다. 민국 2년차에 중국은 수구 기득권 주의자들의 만행으로 아연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 후 중국 대륙은 제국주의국가에 유린되어 만신창이가 되었음은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통장 계좌와 핸드폰 내역만 들추면 사실이 다 나오게 되어있음에도 찌라시들은 일단 김영오씨를 매도하는 융단폭격을 감행 하였다. 일개 노동자인 네가 막강한 언론권력을 어쩔 것이냐는 배짱인 것이다. 통장 내역과 핸드폰 내역으로 그가 아이들에게 무심하지 않았던 아비였던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찌라시들은 개의치 않고 온갖 트집을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 장관 일행이 현장을 방문 하였을 때 불량하게 처신하였다는 것을 물고 늘어졌다.
아이들이 바다 속에 수장되어 있는 판에 구조를 하지 않고 무의미한 최선을 다 하겠다는 공허한 소리만 남발하는 그 현장에서 어느 부모가 이성을 찾을 것인가? 그 자리에서 펄펄 뛰다가 자결을 해도 시원치 않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닌가? 한달에 3만 원짜리 활쏘기운동을 귀족 스포츠로 매도하고 아비가 아이들도 돌보지 않고 귀족놀음을 하였다는 것이다. 천인공노할 일이다. 김영오씨는 너무도 억울한 나머지 성치도 않은 몸으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분노하였다.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이리(豺)라는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잔인한 것을 인간인 것이다.
힘을 잃어가고 있는 야당에 때 아닌 사쿠라 꽃이 만발하였다. 여당의 유족 고립작전에 십 수 명의 야당의원들이 동참하였다. 이를 언론에서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민주당의 어설픈 중도 보수노선이 만든 결과이다. 안철수와 연합하면서 그 보수 노선은 더 강화되었다. 이 판에 안철수는 일언반구도 없다. 김한길은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 어설픈 신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놓은 민주당의 신판 새민연은 작금 분열과 지리멸렬이 시작되었다. 여당과 찌라시들은 박수를 쳐 마지않는다. 민생과 경제를 외면하지 말라고 압박한다.
일 서민 주제인 나도 민생과 경제가 잘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바늘귀에 실을 붙잡아 매서 바느질이 될 까닭이 없고, 모래바닥에 파일을 박고 고층 아파트를 올린들 언젠가는 기울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작금 마구 생겨나 일상을 위협하는 싱크홀이 공연히 생긴 것인가? 다 공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위험이다. 거대한 연안 여객선이 침몰 하게 된 갖가지 원인만 따져도 이 나라의 부조리를 다 밝혀내지 못할 판인데 거기다가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아이들 수 백 명을 구조할 시스템이 전혀 없었던 국가 시스템을 그대로 놔두고 민생과 경제가 잘 될 것인가? 도대체가 국가개조를 하겠다고 천명한 정부여당에서 이를 위하여 못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국가를 개조 하겠다는 마당에 법률 이론과 근거가 문제인가? 지극히 원시적인 논리로 사람 나고 법이 생긴것이지 법부터 생긴 후에 국민이 있는 것인가?
|
어제는 예외 없이 늙은 홍위병들이 야당의 장외 활동을 가로 막고 나섰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늙은 홍위병들이 나설 때가 됐는데 왜 잠잠할까 하고 궁금하던 차였다. 아니나 다를까 떼거리로 길거리에 몰려 나와 냄새나는 입으로 패악을 부리기 시작 하였다. 수 년 전에 이면도로를 차로 지나다가 그들과 조우하여 시비를 벌 인 적이 있는 나는 그들의 면면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대체로 70세 안팎이었다. 그 때 그들과 시비하면서 그 홍위병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인륜도덕을 무시한다면 평소에 차안에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목검을 들고 나가 한바탕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성질대로만 살 수 없는 것이 서민들 생활의 한계이다.
일본의 극우제국주의를 못 잊는 아베가 외할애비 기시 노부스케의 사상을 물려받아 일본제국주의를 부활하자는 식으로 선창하면 일본의 극우 홍위병들은 일제히 거리로 몰려 나가 혐한, 혐중 시위를 한다. 똥 싼 놈들이 역사의 피해자들을 오히려 엿 먹이는 것이다. 세상 도처 어디에나 분별력이 모자라고 지성적으로 수준 이하의 인간들은 늘 있다. 인류역사에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해자들이 결코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들 막가파 홍위병들의 힘이 뒤에서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자들. 호주의 백호주의들. 영국의 유색인종 비하주의자들, 이스라엘의 인종차별주의 극우분자들이 전부 그런 부류들이다.
베트남 민족은 전쟁이 끝난 마당에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서로 수교 하면서 잘 지내자는 대범함을 보였다. 그런 바탕에서 미국, 한국, 프랑스 등과 수교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제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대범한 포용과 실리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 중국과 조선은 일본에 철저히 당했다. 더구나 조선민족은 가장 긴 기간인 36년간이나 수탈을 당했다. 쉽게 포용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본의 극우분자들이 더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그래도 65년도에 체결된 한일협정이 잘 됐다고 주장할 수 있나? 수많은 학생, 교수, 언론인, 서민들을 종로거리에서 경찰봉으로 개 패듯이 두들겨 패면서 살벌하게 국민을 탄압하고 체결한 무상 3억불/유상 2억불로서 모든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한일협정 내용을 놓고 이제 와서 일본인들에게 정부가 뭐라 할 것인가? 아무리 일생을 망친 할머니들이 노구를 이끌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봐야 그들은 합법적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답변뿐이다. 가해국에서 스스로 나서지 않는 한 국가 간의 합의를 번복하자는 주장은 할 수 없다. 작금 한일관계는 일본 극우주의의 덫에 걸려서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일본의 극우정권이 과거사에 대한 인식변환을 할 리가 없고 따라서 한국정부가 명분없이 나라의 체신과 민족의 자존심을 죽이고 관계개선에 나설 수가 없게 되었다.
새누리당 회의실 벽에는 ‘보수혁신’이라는 구호가 걸려 있다. 대국민 홍보성 구호라고 여기면 그만이지만 그들은 과연 무엇을 혁신 하겠다는 것일까? 보수와 혁신은 상반되는 의미다. 혁신을 하면 보수가 안 되고 보수를 하자면 혁신을 포기해야 마땅하다. 그러니 단지 정치적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발상이라면 그 사고방식이 너무 유치하고 얄팍하다. 그 진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지난 선거에서는 세월호 대참사를 의식하여 국가개조를 입에 달고 선거운동을 하였다. 그래서 승리 했던가? 그런데 당선자들이 국회 선서도 하기 전에 세월 호 특별법에 난색이다. 온갖 구실과 변병으로 일관 한다. 국가 개조를 하는 마당에 무엇이 두려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것인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양식 있는 종교인, 지식인, 언론인들이 아무리 애를 쓰고 서민 대중이 목소리를 높여도 세상은 늘 될 대로 되었다. 세상을 바꿀 수 없었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늘 甲이고 대중은 노상 乙의 신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갑의 이념과 사상, 즉 그들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늘 그 모양이 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갑의 전횡. 갑의 횡포. 갑의 보수주의가 혁신(革新)이 가능 한가? 보수주의 혁신을 구호로 내 걸고 있는 한국정치의 갑, 새누리당 지도부에 묻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