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환씨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기원하는 단식대열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도 오늘부터 세월호 동조 단식을 시작합니다. 토, 일요일 큰 행사가 있으니 목요일까지 할 예정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논란이 일고 있는 민감한 사안에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그것도 정부여당에 반하는 의사를 이처럼 분명히 밝히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와 신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향후 정치적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자칫 잘못하면 밥줄은 물론 목숨줄까지 위협받는 곤경에 빠지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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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이와 같은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었고,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시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괘씸죄에 걸려 국가로부터 상상하기 힘든 폭력과 외압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정치권력에 의한 불이익은 여전히 존재한다. 윤도현, 김제동, 김여진, 김미화씨 등 많은 연예인들이 정부정책에 대한 소신있는 발언으로 정권의 눈밖에 나면서 국가기관으로부터 사찰을 받고 방송에서 퇴출당하고 방송출연에 제약을 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가수 이승환씨가 이와 같은 대한민국 정치의 야만성과 후진성을 모를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고자 세월호특별법 단식에 동참했다. '신념이 두려움을 이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도무지 말도 안되게 굴러가는 것만 같은 세상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작동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며칠 전 배우 이산씨는 자신의 SNS에 "유민이 아빠라는 자야,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네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라는 글을 게재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글을 통해 배우 이산씨의 정치적 스탠스를 파악하는 데는 찰라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가 이 무시무시한 저주를 퍼붓는 까닭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그보다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이산씨와 같은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그와 같은 광기어린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가치를 향한 인간의 오랜 투쟁의 역사를 천천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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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환씨와 마찬가지로 배우 이산씨 역시 그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이승환씨에게는 격려와 지지가 잇따르고 있는 반면 이산씨의 경우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관련 글을 삭제한 상태다. 이 분명한 차이는 결국 공감과 비공감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이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놓여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합리적 이성이 결여된 자아가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거스르며 외부로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폭력이며 광기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과 광기가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와 결합되면 파쇼로 진화한다. 그런 면에서 배우 이산씨의 광기와 히틀러의 광기는 별 차이가 없다. 인류사의 비극은 언제나 합리적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한 개인, 혹은 집단의 폭력과 광기로부터 출발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우 이산씨가 보여준 반인류적, 반사회적 폭력과 광기는 대단히 우려스럽다.
'유민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유민아빠'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배우 이산씨와 '유민아빠'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단식에 동참하겠다는 가수 이승환씨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시비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배우 이산씨처럼 살고자 하면 그처럼 될 것이고, 가수 이승환씨처럼 살고자 하면 그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중 누가 더 사회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 이 고민은 사회 공동체를 위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이면서 동시에 기본적인 예의다.
(본 글에 등장하는 '이승환'이라는 이름은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분투 중에 있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대명사임을 밝혀 둔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