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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 사건.
프랑스의 오늘을 있게 하기까지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 중 이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서는 전에도 몇번 올린적도 있고, 특히 유시민 님이 오래전 쓰신 대학교 때의 필독서였던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 가장 먼저 다뤄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글의 전문을 보시려면 http://blog.naver.com/josephkwon/70084411801 이 링크를 클릭해 보시길 바랍니다.
한국의 요즘 모습은 마치 드레퓌스 사건 당시의 프랑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진실을 두고, 그것을 감추려는 쪽과, 그것을 드러내려는 쪽들이 계속해 싸웠고, 나라는 이 사건의 진실 여부를 두고 싸웠습니다. 나라가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핵심적인 공통점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진실을 드러내려는 쪽은 진실 그 자체의 힘을 믿었고, 인권의 보장과 진실의 규명이 역사를 발전시킨다고 믿었습니다.
진실을 감추려는 쪽은 국가의 위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국가의 이름 앞에서 개인은 무시될 수 있다고 믿는 쪽이었습니다. 국가가 그들에게 더 큰 가치였고, 그 가치를 위해서라면 진실 따위는 어느정도 묻혀도 좋다고 생각하는 쪽이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국가가 발표하는 것이 바로 진실 그 자체라고 믿었습니다. 국가의 발표 앞에서 의혹 따위는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인권을 유린하며 진실을 감췄습니다.
결국, 진실을 지키고 이것을 드러내려는 수많은 노력 앞에서 드레퓌스의 명예는 결국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현재의 위상, 즉 현대 시민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전체를 들여다보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최근 몇 년만 해도 진실이 무시되는 일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셀 수도 없는 진실의 왜곡 가운데엔 국가의 위신, 혹은 국가라는 것 자체를 신성시하는 봉건적 사고방식들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진실을 감추는 그 의도 속에는 지금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들의 자기 보전 의지가 내재되어 있는 게 안 보이시는지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존재이유와 방식을 생각해 본다면, 한국은 상식 밖의 나라가 맞습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할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북한이나 남한이나, 모두 서로의 존재를 적대시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그 사회의 기득권층들은 그것을 통해 서로 오래오래 만수무강하겠다는 겁니다. 남은 북을 핑계로, 그리고 북은 남을 핑계로 해서 각자 정권의 권력을 공고히하겠다는 그 속셈 속에서, 사회의 구성원들은 진실의 실체를 둘러싸고 이렇게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 답답합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결국 성공한 프랑스가 어떤 나라가 됐는가를.
진실을 있는 대로 밝히는 것은 결국 국가의 진정한 발전과 내적 성장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진실의 힘은 위대합니다.
세월호 사건을 조사하는 특별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진실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진실을 제대로 밝혀낸 사건이 뭐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드러낸 진실을 통해 제대로 처벌받아야 할 것들을 처벌해본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이것을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해 내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이 제대로 가는 길입니다. 나라를 소수의 힘있는 것들의 나라가 아닌, 헌법에 명시된 대로 진정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그런 상식의 나라로 가는 길이 될 겁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