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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am not a married woman. I had never been married. I have not even a child. I have not a family to take care. I had been married with my People. So, my People is my family. My only wish is my People's. happiness. -from the overseas reports during the presidential election campaign in 2012 -
국민과 결혼 한 60대 여성 국가원수(國家元首)가 위대한 국가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이다. 대선 캠페인에서 공식적으로 확인 해 주면서 국민과 결혼 했다고 선언 하고 국민이 내 가족이라고 공표 하였다. 이에 환호한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혈혈단신. 홀가분한 신분. 속 썩일 가족이 없어 전직들의 가족 부패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국민들이 예견한 이 점은 아직까지 유효하였다.
남편 후안 페론 못지 않은 절대 권력을 행사한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은 나이도 어린 여자가 건방지게 국민을 자식처럼 여겼다. 시내에 별도의 집무실을 두고 매일 출근하여 사무실 앞에 줄을 늘어선 민초들의 민원을 직접 챙기고 해결하고 사무실에 돈다발을 쌓아 놓고 나누어 주고는 하였다. 국립 중앙은행장은 매일 돈을 찍어 내느라 죽을 맛이었다. 현대국가에서 에바 페론의 행태를 잘 한 짓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고 민초들을 직접 상대 하려는 그 성의는 대단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알려진대로 에바 페론은 하층민 출신의 무지한 여인 이었다.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는 국민을 주종관계가 아닌 가족으로 동격화 하였다. 동등한 위치에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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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가 국가원수가 된 후에도 자신이 천명한 이른바 '국민 가족 론'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이 일기 시작하고 있다. 단지 선거용 발언 이었단 말인가? 아니, 아무리 선거 캠페인 이라고 한들 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위상은 제 일의 적인 상위개념의 존재이다. 이러한 국민의 존재와 결혼 했고 가족이라고 천명 한다는 것은 보통의 상식으로 될 일이 아니다. 국민에 대한 무한한 책임 의식과 헌신의 정신이 없고서야 어찌 그러한 발언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이 그를 지지한 이유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점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측근들은 많지 않을 줄 안다.
국가원수의 가족들이 작금 청와대 인근 노상에서 낮에는 땡볕에 시달리고 밤에는 밤이슬에 시달리며 오매불망 대통령을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노상에서 지낸다는 것은 어떠한 현실인가? 단적으로 난감한 형편이고 생각하기에 따라서 졸지에 노숙자가 된 심정이다. 먹고 자고 씻고 하는 모든 일상이 개판이 되는 현실이다. 남자들은 그렇다 치고 이 염천지절에 부녀자들은 어떻게 되는 현실인가? 국가원수 가족들의 이 비극적 상황이 집무실과 관저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삼일째이다. 그런데 가장은 나타나지도 않고 경찰부대가 나타났다. 대형 버스로 산성을 만들어 국가원수의 가족들 주변을 둘러쌌다. 여차하면 도로교통법 위반 카드를 빼들 기세다. 어느 부녀자가 찬 아스팔트 바닥에 깔려던 거적 대기를 인정머리 없는 경찰관이 빼앗으려다 실랑이가 벌어졌다. 힘에 부친 그 부녀자, 대통령의 가족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도로 위에 벌렁 누워 통곡을 터트리며 하느님, 예수님을 불렀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비극이다. 미학적으로 불쾌한 비극이다. 국가 지도자의 가족들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되었나? 필부들의 저자거리엔 변소(便所) 문(門)의 철학이라는 것이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갈 때의 심정과 나올 때의 심사(心思)가 다르다는 사상이다.
신(神)은 죽었다고 저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니체라는 철학자가 공연히 악담을 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신은 왜 인간의 맨탈을 이따위로 만들었단 말인가.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는 철저히 신을 부정했다고 한다. 그 심정 이해가 간다. 예수를 부활시킨 신이 이스라엘에 존재 한다면 팔레스타인 백성들을 마구 학살하고 있는 악질 극우분자 네탄야후에게 당장 불벼락을 내려 태워 죽였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한편으로 교황 프란치스코의 언행을 경험한 우리는 또한 신의 존재를 믿고 의지하고 싶어 한다. 그 고귀한 가르침은 신을 느끼게 만든다.
"낮은 곳으로 임하시오!" "가족을 내 몸같이 보살피시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하여 관용의 신을 만났다.
대한민국 국가원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과의 결혼을 선포했을 때의 숭고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청와대 문을 나서 가족들을 데리고 청와대로 들어가서 보살피고 밥을 먹이고 가족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가족처럼 편안한 존재가 없는 것이다. 내 형제 내 가족이 주는 밥은 살로 가도 남이 사주는 밥은 살로 가지 않는 법이다. 인지상정인 것이다.
가족들(국민)과 더불어 화목한 국가원수를 TV로 보고 싶은 것이 이 시점에서의 국민의 마음이다. 이것이 무리한 바램 일까? 국민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