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모으며 한때 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느날 돌연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자연인으로서의 삶으로 복귀한다고 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퇴장을 아쉬워했다. 그는 정치현안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줄 아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었고, 탁월한 식견과 해박한 지식, 정연한 논리를 갖춘 대한민국 정치판에선 보기드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달변가였고 권위와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는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이런 그의 성정은 대한민국의 정치환경과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았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그에게 항상 분열과 갈등의 정치인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녔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반영하듯 유시민에 대한 평가는 극단을 달린다. '분열주의자'와 '정당파괴자', '개혁가'와 '혁명가'라는 상반된 평가는 그의 정치인생이 얼마나 심하게 굴곡져 있는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평가는 이를 바라보는 개별 주체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의 몫이다. 다만 그는 직업적 정치인보다는 작가이자 칼럼리스트, 비평가이자 활동가로서의 면면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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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은퇴를 선언하고 한동안 책집필에 몰두하며 간간히 북콘서트와 강연 등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그가 지난 22일 조계종 불학 연구소 워크숍 강연을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비판해서 눈길을 끈다. 그는 먼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어떤 국가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이 비정상적'이라고 비판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건넨 박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이론이 아니라 심리학자의 도움이 있어야 해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교황님이 오셨을 때 남 얘기하듯이 하잖아요, 옆에서. '위로해주셔서 고맙다'고. 그것이 우리가 보통 상식으론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죠. 이건 정치이론으의 도움이나 국가이론의 도움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심리학자의 도움이 있어야만 설명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선 완전히 정상궤도를 이탈했기 때문에 이론으론 설명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시민)
물론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을 책임지는 통수권자로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해준 교황에 대한 의례적인 멘트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을 국가가 앞장서서 치유해 주었을 때에야 비로서 의미를 부여받는다. 지금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대해 박 대통령이 사실상 두 손을 놓고 있고, 유가족에 대해서도 매몰차게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이는 그녀가 대통령으로서의 역할과 책무를 망각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온 것으로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발언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위로받을 대상은 억울하게 가족을 떠나보낸 희생자의 유가족이고, 위로를 해야 하는 주체는 대통령을 포함한 전 국민임은 초등학생들도 안다. 그러나 모두가 애통해하고 비통해하고 있을 때 박 대통령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고통을 끌어안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과연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근대의 사회학 성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정치가이자 철학자이며 사회경제학자인 막스 베버는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신념윤리와 함께 책임윤리를 손꼽았다. 이 위대한 사상가의 기준으로 본다면 박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 낙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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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유족들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구를 거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를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하며, 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은 '대통령 스스로가 적폐의 일부분'이란 인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대통령은 자기 자신도 과거 적폐의 산물임을 모르고 있어요. 과거의 적폐는 적폐, 나는 나. 이렇게 돼있으니까 내가 그 일부가 돼있는 적폐를 손대야 하는 게 대통령의 과제인데, 나는 떼놓고 적폐를 얘기하니까 없앨 수 있는 적폐가 없어요. 그러니까 80 넘은 어떤 할아버지를, 토크쇼하던 분을 공공기관에. 고스란히 지금 적폐 속에 있어요, 대통령이. 적폐를 씻어내야 한다는 진단은 동의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야 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적폐의 일부인데 자기를 빼놓고 어디를 혁신합니까?" (유시민)
2014년 대한민국은 적폐란 단어가 대량 유통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난해한 단어를 박 대통령이 꺼내든 후 국가기관 공직사회 가릴 것 없이 너도나도 적폐를 없애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신드롬이란 바로 이와 같은 이상현상을 말하는 것이리라. 박 대통령이 대유행시킨 이 단어는 아주 오랫동안 쌓여온 폐단이란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우리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자리잡은 적폐는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사회구성원들의 건강한 삶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폐단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이를 선도하는 세력이 먼저 적폐로부터 자유롭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그러나 유시민의 지적처럼 적폐를 반드시 도려내겠다는 박 대통령과 이 정부가 오히려 더 '적폐적'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태도야말로 이들의 적폐가 얼마나 뿌리깊고 질기며 오래된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분 일초가 급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저들은 아이들의 죽음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거나, 상급자의 의전을 신경쓰거나, VIP를 위한 사고 영상의 확보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시각 박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사생활이며 국가기밀로 금기의 영역으로 봉인돼 있다. 모두 없어져야 할 적폐다. 성역없는 진상규명을 통해 반드시 유가족의 아픔을 닦아드리겠다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던 대통령은 이후 돌변했고, 정부여당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는 물론이고 세월호특별법까지 누더기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반드시 척결해야 할 우리시대의 적폐다. 적폐는 또 있다. 국정최고통수권자로서 국가재난사태에 대한 최종책임은 박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 책임을 선장과 선사 그리고 '관피아'로 불리우는 시스템의 문제로 둔갑시켜 버렸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무책임한 태도야말로 우리사회가 반드시 뿌리뽑아야 할 망국적 적폐다. 빨지 않은 걸레로 아무리 집 안을 문지르고 닦아본 들 청결해지기는 커녕 더욱 악취가 나게 마련이다.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적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마치 점령군처럼 척폐 척결을 지휘하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극단적인 자기부정이자 자가당착인가.
유시민은 이어 야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야당이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단체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야당이 야성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하죠.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어땠습니까? 사학법 개정 때문에 두 달 넘게 국회를 완전 마비시키고 정기국회 때 밖으로 끌고나가서 청계광장에서 촛불 들고 다 했습니다. 아주 잘 싸웠어요, (박근혜 대표가)야당 때 진짜 거칠게. 그런데 지금 야당은 싸울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정부의 국가운영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서 싸우기 보다는 그냥 어찌보면 실제 그런지, 안 그런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익단체처럼 행동한 측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유시민)
관련글 ☞ 새정치, 이 무력한 자들을 어이할꼬? ☜ (클릭)최근 대한민국 정치의 이상기류 중 하나는 집권당에 대한 대체제로서 야당의 존재감이 극히 미미하다는 데에 있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여당보다 야당을 더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나라 정치체제의 비정상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비근한 예다.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전혀 야당답지 못한 행태로 정치정당으로서의 존재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야당은 야당다와야 하며 야당에게는 하늘이 두쪽나도 변치않는 그들만의 역할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야성을 잃어버린 야당이 시민들의 정치욕구를 현실정치에 반영시키지 않고 기득권에 안주할 때 민주주의와 시민권익에 어떤 적신호가 켜지는지 새정치민주연합을 통해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글을 참고하면 될 듯 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 그리고 야당에 이르기까지 가차없이 메스를 들이대는 유시민의 일갈은 정치권과 우리사회의 비정상성에 대한 통렬한 일침이자 경고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유시민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사람들에게도 익숙했던 교사이자 시민계몽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시민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유보해두고) 칼럼리스트이자 정치비평가로서의 탁월한 혜안과 안목이 오늘의 그를 있게 만든 근간이었다면, 여기에 더해 현장정치에서의 경험은 작가로서, 칼럼리스트로서, 정치비평가로서 그의 여정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빛나는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오늘 필자는 유시민의 시선 그 너머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 책임윤리가 사라져버린 대통령과 정부여당, 이익집단의 풍모마저 느껴지는 무기력한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시민(당신)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시켜 나갈 것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마주 서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처참하게 망가진 이 땅의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위협받는 국민의 존엄과 주권을 되찾는 단초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과정은 최상의 결과로 향하는 이정표이므로.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