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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이파의(甑已破矣)면 만사휴의(萬事休矣)다.
오늘의 정국은 증이파의(甑已破矣)에 만사휴의(萬事休矣)로 치닫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나라의 중심에서 통촉(洞燭)이 없으니 소통이 없고 불통으로 막혔다. 지하에 매설된 가스관이 불통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가스압력이 비등하면 폭발하고 말 것이다. 분뇨관이 막히고 하수도가 막히면 어떻게 되는가? 끔찍한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세월호 특별법 여야 협상의 결과가 나오자 내가 머릿속에서 끄집어 낸 어휘는 증이파의에 만사휴의였다. 책상위에 놓인 백지에 한자어로 한 번 써 보는데 시루 증자가 기억에 없는 것이었다. ‘ㅇ 已破矣’로 표기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사유가 실개천의 얕은 물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한문은 고사하고 한자어에도 무식하다는 것은 한 인간의 지적 역량이 바닥을 헤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단 한 번뿐인 삶이니 무지하게 살다가 그대로 죽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한글 전용을 고집하는 한겨레 언론을 애독하면서 이런 말이 자가당착인 것을 알지만 솔직한 생각이다. 한글은 어디까지나 소리글이다. 사물을 묘사 하거나 생각을 표현하려면 장황한 내용과 그 만큼의 글자를 필요로 한다. 번거롭고 비효율적이다. 쓸데없는 말만 난무하는 이 나라의 정치판을 닮았다.
작금 나라를 운영하고 있는 지도급 인물들은 거의 전쟁 중에 태어난 세대이다. 휴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도 많다. 한글세대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중고교 평준화 세대이다. 중학교 3학년 때 한문교과서를 기억 하고 일주일에 한 시간의 수업이 있었지만 천지분간을 못하고 기본이 안 된 어린 아이들의 한문수강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겨우 시험범위나 달달 외워 시험을 보고 나면 그대로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오늘날 학자들을 제하고 나면 한문을 읽고 해석하는 이가 거의 드물다고 알려 져 있다. 그러니 주옥같은 고전을 읽을 엄두를 낼 수 없다. 영어의 고전도 못 읽고 한문의 고전도 못 읽으니 오로지 소리글인 한글로 번역한 글만 읽게 되는 것이다.
고 이영희 선생은 언론인 이자 학자로서의 소임을 다 하고자 한글을 제하고도 영어 중국어 일어 등 3개 국어를 읽고 쓸 줄 알았다. 거기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프랑스어까지 읽기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언론인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젊은 학자들이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을 늘 한탄하였다고 한다. 도대체가 역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공부할 문헌이 대개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어 등 외국어로 되어 있는 판에 언론인들과 학자들은 뭘 가지고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한다는 것인가를 선생은 개탄 하였던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의 학자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를 매우 부러워 했다고 한다.
중고교 입시 평준화는 3공 정권 때 이루어졌다.
58년 개띠 生들부터 적용을 받았다. 이들도 이제는 사회의 중진 세력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잘 된 정책이었냐, 나라 망해 먹을 정책이었나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또한 빈부차등에 관계없이 시험을 보고 능력껏 우수한 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지던 제도가 요즘에는 빈부의 차등으로 입학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자율 사립고와 공립 고등학교로 나뉘어 졌으니 빈부의 격차로 고등학교를 정하느니 아예 평준화로 나가야 할 일이다. 중 고교 평준화는 이미 3공화국 정권이 수 십 년 전에 저지른 정책 이 아닌가.
점잖은 표현으로,
권위주의 정권은 국민의 지성이 발달하고 지적 소양이 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당연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아닌가?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자와 정부 자체가 수준이 높을 수가 없는 것인데 국민의 지성이 높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정부가 하는 일이 매사 가소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국민이 정부를 백안시 하거나 얕잡아 보게 된다. 정권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은 그저 국민이 안거낙업(安居樂業)의 사상을 가지고 정권에 참견함이 없이 프로야구나 구경하며 노래방에서 격앙가나 부르고 살기를 바란다.
이 정부는 권위주의 정부인가? 결단코 아니다. 민주주의 정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북을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고 반북을 그 이념으로 하는 것 아닌가? 북한이 반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이념에 충실하고 있을까. 일개인의 입장에서 국민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끌고 들어가 숟가락 얹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 정국을 지켜보고 있는 다수의 국민은 증이파의 식의 극단적 현실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줄 안다. 시루가 깨지면 만들려던 떡을 더 이상 만들 수 없다. 만사 끝장인 것이다. 만사휴의다.
집권당 내부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세월호 유족 보다 전체국민의 삶이 더 중요하다.” 변소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더니 이것이 과연 국정을 책임 진 여당이 할 말인가? 전형적인 국민 나누기 셈법의 정치행태이다. 세월호 유족들과 나머지 국민이 다르다는 것인가? 나머지 국민에 영합하면서 세월 호 유족들 때문에 국정이 마비된다는 의미가 깔려 있는 것 아닌가. 한편으로 집권당에 대한 동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예전의 우간다의 이디 아민 정권이나, 파라과이의 군사독재정권 같았으면 그저 몽땅 대형 수송기에 태워 밀림 위에서 낙하산도 없이 비행기 밖으로 쫒아 내면 간단할 일 아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열손가락을 펴 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 나누기 셈법식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개 민초 주제에 내가 집권당을 동정하게 생겼던가?
작금,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의 중심에는 대박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극우주의자들이 들으면 반북사상이 아닌 것에 섭섭함을 넘어 분기탱천할 일이지만 현실을 왜곡할 수야 없지 않은가. 이 사회의 패러다임은 대박사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민족통일, 국토 통일사업의 중심에도 대박사상이 똬리를 틀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중심사상은 ‘인본주의’가 자리 잡아야 할 일인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른 것 같다. 중 고등학교 길목이나 옆에 경마 도박장을 만들고 호텔을 짓겠다고 하는 정책 자체가 대박 사상의 발로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문교육의 강화를 내 세운다. 앞뒤 없는 자가당착인 것이다.
단식을 한다는 것은 매 순간을 견디는 일이다. 밥을 굶어 보지 않은 인간들은 그 고통을 알 수가 없다. 김영오씨는 억울하게 죽은 자식의 영혼을 위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매 순간을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고 있다. 그를 동정하여 안온한 삶을 살던 영화배우들, 가수들까지 나섰다. 그래도 정부 여당은 오불관언이다. 인도의 영국 식민지 시절엔 간디가 단식을 선언하면 인도의 영국 총독부는 물론 본토의 영국정부도 긴장을 하였다. 일주일이 넘어가도 단식이 멈출 기미가 없으면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간디의 집으로 몰려들고 라디오 생방송으로 매 순간 중계를 하고 시시각각 신문사로 기사를 송고 한다. 총독부 고위관리가 부산하게 간디의 집을 다녀간다. 그래도 안 되면 관용차로 간디를 총독부로 모셔 놓고 총독 집무실에서 직접 설득을 하였다. 대체로 간디의 요구를 수용하는 편이었다. 명색이 의회민주주의를 한다는 영국에서 남의 나라 남의 민족을 식민 통치한다는 것 자체가 명분이 없는 것 아닌가. 식민 정책 자체가 부당하고 무리한 정책이니 영국 총독이 할 말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간디의 요구가 부당할 리 없는 이치인 것이다.
목숨을 걸고 39일 째 단식을 하고 있는 김영오씨의 요구가 부당한 것일까? 대통령을 만나서 하소연이라도 해 보고 단식을 계속하든 밥을 먹던 하겠다는 것이 무리한 요구 인가? 그런데 어제 청와대는 국회로 공을 떠 넘겼다. 집권당은 김 영오 씨에 대하여 일절 무시전략으로 일관 한다. 오히려 야당의 꼼수 전력이라고 비난 한다. 그러고는 유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 민생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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