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온라인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뜻밖에도 바다 건너 제주로부터 전해졌다. 김수창 제주 지검장이 지난 13일 오전 0시 45분 무렵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음식집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귀가하던 여고생의 신고로 현장에서 붙잡힌 김수창 제주 지검장은 모두가 아는 뻔한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그는 경찰의 음란행위 혐의 추궁에 "그런 적 없다"고 혐의를 부인하는 한편 "평검사 생활 22년간 조그마한 흠집도 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는데, 어이없는 봉변을 당했다. 하루빨리 철저하고 명백하게 진상을 밝혀달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억울하다던 그의 항변은 CCTV에 잡힌 한 남성의 음란행위 장면이 공개됨으로써 억울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CCTV에 찍힌 남성의 복장과 인상착의가 최초 이 장면을 목격한 여고생의 진술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고 자신 이외에 다른 한사람이 더 있었다는 그의 주장과는 달리 영상 속에는 한 사람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검사장직을 걸고 결백을 주장하며 사의를 표명하지 않겠다던 그가 하루 만에 법무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대로라면 현직 지방검찰청의 수장이 음란행위 현행법으로 체포되는 사상초유의 일이 사실로 확정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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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행위는 통상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키거나 사회일반의 성도덕을 해치는 행위를 일컫는다. 공공연히 음란행위를 한 혐의(형법 제245조 공연음란죄)로 체포된 김수창 제주 지검장이 공공장소가 아닌 개인적 공간에서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한 행위를 했다면 이것이 문제될 까닭이 전혀 없다. 그가 공직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성적 취향까지 타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장소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타인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행위를 했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형법에 의하면
음란죄는 성욕을 흥분·자극시키는 행위와 관련된 범죄를 총칭하는 것으로 함부로 성욕을 자극 또는 흥분시킴으로써, 보통 정상인의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신고한 여고생에 따르면 김수창 제주 지검장은 이날 '앉아서, 그리고 길 위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술취해 있지 않았다는 경찰 진술은 그 행위의 고의성 마저 의심케 만든다. 얼마 전 종영된 범죄수사 드라마 '갑동이'에서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범은 그 사건 수사를 책임지던 수사팀장으로 밝혀졌다. 꽤나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장면들이 현실에서 일어난다 해도 이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현직 지방 지검장이 사실은 변태성욕자였다는 설정도 소재의 참신성은 있을지언정 더이상 놀랍지도 충격적이지도 않다.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여러차례 이런 장면들을 현실에서 목격해 오지 않았던가. 청와대 대변인이 방미외교 중 인턴의 엉덩이를 대범하게 주무르고, 법무부 차관이 건설업자로부터 성접대까지 받는 마당에 현직 지방검사장의 음란행위 쯤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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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를 놀랍게 만드는 것은 사실 따로 있다. 이와 같은 고위공직자의 일탈을 바라보는 정부와 관료집단 및 우리사회의 대응방식이다. 국내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윤창중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이 희대의 사건의 핵심은 윤창중이 한 여성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 누구와 성적 행위를 할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가 있고 이 권리는 다른 누군가가 절대로 침해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법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이라 칭하는 이 권리를 윤창중이 바로 그날 침범한 것이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인권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사회의 관심은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 윤창중의 '손'과 피해자의 '엉덩이'에 쏠려 있었다.
어떤 이는 '가슴도 아니고 그깟 엉덩이 툭 친 것 가지고'라며 되려 그의 추락을 안타까워 하기도 했고, 변희재 같은 사람은 음모론을 제기하며 윤창중을 두둔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천박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윤창중의 성추행을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 또는 비뚤어진 성문화,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헤프닝 정도로 가볍게 넘겨버린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박근혜 정권과 관료집단의 사후대처에 있다. 모두가 반대했던 윤창중을 고집함으로써 국제적 망신의 실질적인 원인 제공자였던 박 대통령은 마지못해 대리사과하는 것으로 슬그머니 책임을 비켜갔고, 정치권에서는 단순한 개인적 실수 혹은 일탈로 치부하며 불똥을 차단하기에 급급했다. 이 모두가 사건의 핵심과는 동떨어져 있는 의미없는 반응들이다.
김수창 제주 지검장의 음란행위에 대한 정부와 관료집단의 대응방식 역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공직기강을 재확립하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들은 이 사건을 단순히 공직사회의 도덕 윤리관과는 무관한 개인의 일탈로 규정하고 있고, 봐주기와 제식구 감싸기의 전형적인 집단이기주의를 답습하고 있다. 법무부는 발빠르게 그의 면직처리를 결정했다. 법무부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어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처사"라고 면직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현직 지방 지검장의 음란행위 혐의에 감찰과정도 없이 면직 결정을 내려준 법무부의 신속한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뻔해도 너무 뻔하다. 따라서 그의 행위를 단순 경범죄 정도로 치부하는 검찰의 행태에서 성접대 파문을 일으킨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무혐의 결정과, 살해당한 재력가 송 모씨에게 1백만 원이 넘는 접대를 받고 1800만 원 가량의 돈을 수수한 현직 검사에 대한 무혐의 처리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위공직자는 솔선수범의 본을 보여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근혜 정권 들어 고위공직자의 성추행, 성접대, 음란행위 등의 해괴망측한 일들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를 박근혜 정권의 고위공직자 임용기준의 대폭 하향평준화 탓으로 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권의 도덕적 해이와 그 천박함이 국민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직기강 확립. 박 대통령과 이 정권의 내각들이 노출된 공간에서 늘 습관처럼 하는 말이다. 그러나 공직기강의 확립은 말로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신상필벌에 대한 변치않는 원칙과 기준,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단호하고 확고한 의지, 고위공직자 스스로의 성찰과 겸양 등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과연 박근혜 정권의 현실은 어떨까. 보는 관점에 따라,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누군가의 '손'이 누군가의 '엉덩이'로, 누군가의 '가슴'으로, 누군가의 '주머니'로 향하는 것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