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의 끔찍함을 벌써 다 잊은 건가. 이 사건을 바라보며 요즘 드는 생각은 '반드시 잊지 않겠다'던 어른들의 분노와 각오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아직도 SNS를 통해서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고, 촛불시위에 참석하며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분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참사를 기억하고자 애쓰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의문은 여전히 가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4개월. 이 끔찍한 비극를 둘러싼 진실은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풀린 것이 없다. 세월호는 여전히 차디찬 바다속에 가라앉아 있고, 10명의 실종자는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해달라며 유가족들이 목숨을 건 단식을 한달 넘게 벌이고 있고, 주말마다 수백 수천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지만 수백만명이 조문대열에 합류하고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정부와 정치권에 으름장을 놓을 당시와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를 단순히 한국사람 특유의 냄비근성쯤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아이들의 죽음이 너무나 허망하지 않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많은 글들을 써왔던 필자의 견해에 반대하는 일단의 부류들이 남긴 흔적(댓글)은 대개 두가지로 모아진다. 대통령의 공사다망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무슨 잘못(책임)이냐는 투와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특별법을 요구하는 유족들에 대한 비난과 모욕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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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없는 맹목적 댓글러들을 제외하고) 아마도 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책임없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불가항력의 재해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대통령이 초인이 아닌 이상 불가항력의 재난까지 어떻게 막을 수 있으며 그런 이유로 대통령에게 책임지라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식이다. 얼핏 들으면 귀가 솔깃해지기까지 하는 이 주장은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이며 관재라는 사실 앞에서 힘을 못쓴다.
선박의 도입과 운항, 사고와 그 이후의 정부 대응까지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부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국가적 참사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가비상사태시에 발휘되야 할 최고통수권자로서의 모습이 박 대통령에게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무려 삼백명이 넘는 자국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대통령이 그 위급한 시각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조차 밝혀진 바가 없다. 반드시 원인을 규명해서 책임자를 엄벌하겠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에 불과했음도 드러났다.
사실 세월호 정국과 관련하여 박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어이없음'은 열거하기에도 벅찰만큼 차고 넘쳐서 적잖은 사람들을 당황케 만든다. 설마 대통령이 이정도까지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고개를 절로 흔들 정도로 황망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서는 나몰라라를 외치고 있다. 책임이란 결국 절차와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판단의 산물이다. 책임질 위치에 있으면 과정과 결과에 대해 의당 책임을 져야 하는게 마땅하다. 어떻게 질 것인지, 어디까지 질 것인지의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사회도덕률로서 이처럼 간단한 명제가 미적분처럼 어렵게 인식되는 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둘러싼 세월호특별법의 공방은 '대통령 책임론'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치열한 성격을 지닌다. '진상규명=정권 책임, 대통령 책임'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레 성립되기 때문이다.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국정조사는 물론 특별법까지 기를 쓰고 무력화시키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월호특별법 파행의 처음이자 끝인 수사권과 기소권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영민한 새누리당은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절대원칙을 전면에 내세우며 국면을 리드해 나간다. 이 대원칙은 마찬가지로 '수사권과 기소권=헌법 파괴'란 등식을 만들게 되고, 시스템이란 절대로 깨져서는 안된다고 철썩같이 믿고있는 올드보이들과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무당파들에게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 노련한 자들은 여기에 민생과 경제라는 강력한 '환기제'를 결합시키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사이버공간에서 마구 양산된 단원고학생 특례입학, 의사자 지정, 보상과 배상 등도 좋은 첨가제로 작용하며 세월호특별법의 흠집내기에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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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최고통수권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대통령의 책무로부터 리버럴한 방임주의자임이 드러났고, 집권여당이 중심이된 정치권은 머털도사는 저리가랄 정도의 둔갑술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나와는 별 상관없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제로다. 친일청산과 군사독재세력에 대한 준엄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가 작금의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비극의 시작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듯 역사적 사회적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폐악을 이 글을 통해 설명하는 것은 지극히 무의미하다.
각설하고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는 온전히 각자의 영역이다.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과 밝혀내려는 자들의 싸움에서 그 어느 편에 서든 이는 개인이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이 전태일의 뜨거운 죽음이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한 각성과 노동자로서의 주체적 삶에 불을 지폈다는 것과 자유를 갈망하는 혈기어린 청춘들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목숨을 걸고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는 사실 정도는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후'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민주주의조차 현실의 부당함과 불의에 맞서 저항해온 사람들의 희생 덕분에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기억해주길 바란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라는 말 속에는 그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사람들의 분투가 녹아있음을 간과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그것이 이 땅에 정의와 진실을 바로 새우기 위해 노력했던 선배들,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도리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