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로구 가회동에 소재한 재동초등학교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북촌학당에서 작년 가을부터 ‘플루타르크 영웅전’ 읽기 모임을 격주로 진행해오고 있다. 사실은 여러 가지 개인적 사정들로 말미암아 반년 넘게 공부 모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금년 여름에 들어서야 오랫동안 나를 애먹여온 자잘한 주변상황들이 대략적으로 정리된 터라 얼마 전부터 비로소 모임을 재개할 수가 있었다. 게으로고 변변찮은 내게 소중한 공간을 흔쾌히 내어주신 주대환 선생님과 김윤 선배님 두 분께 뒤늦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우리가 교과서와 참고서 다음 순서로 어렸을 적에 자주 보았던 책은 아마도 위인전이리라. 초등학교 시절 위인전을 읽고 난 후에 반성문에 가까운 독후감을 제출하는 것은 일기를 쓰는 것만큼이나 재미없으면서도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이러한 형식으로 이뤄지는 강제적 인물 읽기가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로 만드는 일을 집요하게 방해해왔음은 물론이다.
이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인과 영웅의 차이점을 인식하지를 못한다. 그 결과 ‘성웅’이라는, 위인과 영웅의 경계인 비슷한 개념마저도 급기야 출현하고 말았다. 영웅이면 영웅이지 성웅은 뭐란 말인가? 미국에서는 충분히 영웅으로 대접받고도 남았을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어정쩡하게 ‘의인’으로 분류되는 현상도 영웅에 대한 이해도, 관심도 극히 부실한 우리사회가 빚어낸 씁쓸하고 일그러진 풍속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영웅은 과연 어떠한 성격과 유형의 존재를 가리킬까? 국어사전에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서술돼 있다. 나는 여기에 중요하면서도 본질적인 한 가지 요구사항을 덧붙이고자 한다. 영웅은 어려운 일은 어려운 일이되 “그 시대가 요구하는”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한다고. 충무공 이순신은 16세기 말의 조선시대가 요구하는 제일 어려운 일, 곧 보국안민(輔國安民)을 해냈기 때문에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럼 영웅과 위인의 차이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영웅과 위인의 결정적 차별성은 그를 추동시키는 심리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위인이 정의감으로 움직인다면, 영웅은 결핍감으로 행동하는 이유에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이러한 관점이 단연 선명하고 전형적으로 표현된 저작이다.
동양의 고대사가 사마천의 붓끝에서 태어났다면, 서양의 고대사는 플루타르코스의 손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는 한반도에서 나름 풍부한 독자층을 확보해왔지만,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돈키호테’와 더불어 동화책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영웅이 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 영웅전까지도 덩달아 찬밥 신세가 돼버린 격이랄까….
영웅을 잃어버린 시대는 꿈을 잃어버린 시대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리더십이 실종된 시대이기도 하다. 꿈과 리더십이 부재한 시대에 남는 것은 맹목적 안정 희구와 소심한 평균 지향일 따름이다. 꿈으로 갈무리된 이상과, 그러한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해낼 리더십이 소멸한 자리에서 우리가 그토록 목말라하는 혁신과 변화가 정치에서든, 경제에서든, 문화예술에서든 일어날 턱이 없는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아테네 중심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 중에서 비슷한 업적과 성취를 이룩한 이들을 짝지어놓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저자인 플루타르코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줄곧 쇠퇴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로마의 속주로 전락한 그리스의 혈통을 이어받은 로마인이었던 까닭에 그는 자신의 책에서 그리스를 로마와 대등한 지위로 올려놓는 걸 통해 나름대로 그리스인의 체면을 살리려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허나 로마는 그리스의 후계자를 자처했으니 아테네를 건국한 테세우스가 로마의 창업자 로물루스와 동일한 반열에 오른 것이 플루타르코스의 일방적 견강부회나 터무니없는 아전인수는 아니었을 게다.
최고의 혁신은 창업이고. 건국을 능가하는 변화는 없다. 테세우스는 아테네를 창업함으로써 고대 그리스 세계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로물루스는 로마를 건국함으로써 고대 지중해 세계가 놀랍도록 혁신해나갈 단초와 계기를 마련해줬다. 고대의 참다운 영웅들은 선의와 진정성에만 의존하다가 ‘아름다운 패배’를 거두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때로는 악행도 서슴지 않는 확실한 문제해결 역량으로 혁신과 변화를 일궜던 인간들이었다. ‘아름다운 패배’가 끊이지 않아온 오늘날의 대한민국 야당이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혁신의 불모지이자 변화의 무풍지대가 됐음을 염두에 둔다면 매우 의미심장한 시사점이라고 하겠다.
테세우스와 로물루스가 서두를 장식한 1권의 메시지는 창업이다. 카밀루스가 서막을 여는 2권의 메시지는 재건이다. 카밀루스는 다섯 차례나 독재관에 임명되었던 인물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그와 엇비슷한 횟수만큼 탄핵을 받았다는 데 있다. 위기에 처한 조국의 부름에는 언제든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기꺼이 응했고, 그의 맹활약 덕분에 난국을 타개한 나라와 인민이 그를 더는 원하지 않았을 때에는 권력의 정상에서 미련 없이 깔끔하게 내려왔다. 한마디로 마치 이순신과 처칠을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인물상이었던 셈이다.
그는 외적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에게 전쟁에서 두 차례나 대패한 갈리아인은 로마를 침략할 엄두를 다시는 내지 못했다. 카이사르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외치기 350년 전에 이미 갈리아인은 로마인에게 정신적으로 굴복해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카밀루스는 동포에게는 노리갯감이었다. 손자뻘의 젊은이가 포룸에서 공무를 보고 있던 그를 끌어내려고 하자 카밀루스는 무서움에 질려 벌벌 떨었다고 한다.
카밀루스는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갈리아인과의 첫 번째 전쟁에서 그야말로 재미를 본 전투방식을 두 번째 전쟁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낡은 자신을 부정하는 ‘자기부정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가 혁신적인 전술과 방법을 동원해 두 번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의 나이는 벌써 80살에 임박해 있었다. ‘영남후보론’이라는 2002년의 성공모델에 여전히 교조적으로 매달리며 일체의 혁신과 변화를 완고하게 거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야당과는 천양지차의 태도이고 생각이었다.
카밀루스가 이러한 영웅적 성과물을 쌓을 수 있었던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첫째 그는 로마가 직면한 위기를 정확히 진단해냈다. 무능한 지도자들이 위기의 원인임을 간파한 것이다. 둘째, 그릇된 민심과 싸워야 할 때는 분연히 싸웠다. 7개월 동안 갈리아인에게 노략질당해 황폐화된 로마를 버리고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인근 도시 베이이로 이주하자는 대다수 의견에 맞서서 로마시의 재건에 착수한 것이다. 로물루스가 천년제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해놓은 로마를 이때 로마인들이 포기했다면 현대의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는 역사에 없었을 터. 셋째,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카밀루스는 자신의 충고를 무시하고 성급하게 싸움을 걸었다가 패전한 젊은 장군을 나중에 벌어진 또 다른 전쟁에 군정관으로 직접 발탁해 출전시킴으로써 로마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장수가 지난번 패배의 치욕을 만회할 기회를 갖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2천 5백년을 거슬러 내려와 우리나라 야당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그들은 위기의 정확한 원인이 무언지조차 모른다. 야당이 망해가는 건 실력이 모자라서이지, 내로라하는 야당 정치인들이나 이름난 진보 지식인들의 주장처럼 노선이 잘못돼서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야당은 일부 극렬 지지층의 단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여론의 꽁무니를 좇기에만 급급해한다. 그러니 매일 트위터에서 노닥거리는 것이 야당 정치인들의 핵심적 일상사가 된 것이다. 야당은 다음 세대를 키울 의지도,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7․30 재보궐 선거의 공천이 잘못되었다는 문제제기를 야당은 이제는 머리가 다 하얗게 센 이인영씨가 앞장서 한 데 반하여, 여당은 여드름자국이 얼굴에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이준석군이 주도하였다. 자기부정의 대가였던 카밀루스와는 다르게 과거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