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오물 투척 사건의 주인공 故 김두한 의원 세습 재벌집의 신상품 광고 카피를 들을 때마다 묘한 느낌을 갖는다.
"본질로부터....."
본질(本質)로부터 바뀌었다는 것인가, 바꾸겠다는 것인가? 1990년도에 면허를 취득하고 처음 승용차를 장만하면서 부터 24년 동안 그 재벌 집에서 만든 상품을 몇 년의 세월을 격하고 두 번 구입하였다. XX타 라는 브랜드와 그ㅇㅇ라는 브랜드의 상품 이었지만 몇 년을 격하고 본질이 변하거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민들이 타기엔 무난하지만 그렇다고 충족감을 주는 상품들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 그 집 상품을 쓰지 않는다. 해고 근로자들이 만든 자동차 하나만 남기고 처분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모든 사물의 본질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세상을 겪은 나머지이다. 남을 깐죽거리는 인간은 늙어서도 깐죽거리고, 젊어서 상습적으로 폭력을 쓰는 인간은 늙어서 지하철에 타서도 횡패를 부린다.
타고난 체력과 순발력, 담대함으로 해방 전후 시대에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던 협객이었던 고 김두한 선생이 생전에 라디오 방송 회고담 프로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하였다. 1970년도 전후의 일이다. 아직도 나에게 40분 분량의 녹음테이프가 남아 있다.
"내가 시대를 잘못 타고나는 바람에 배워먹지를 못해서 무식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본질이 어디 가겠습니까? 독립투사였던 선친(김좌진 장군)의 본질이 있거든."
선생의 됨됨이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어서 새삼 소개할 일이 아니다. 다만, 김두한은 재담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권ㅇㅇ 당시 동아일보 편집장과의 대담이었는데 대단한 달변에 말의 조리가 분명하고 전후 맥락이 논리적으로 잘 연결된 말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 처신이 반듯하여 청취자나 대담 자에게 깍듯한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 누가 그를 무학자라 비웃을 것인가. 그는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거인이었다.
창업재벌 X성은 1966년 5월 당대에 한국비료공장을 지으면서 건축자재로 속이고 사카린을 한 배 가득 대량 밀수하다가 소문이 비등하여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게 되었다. 재벌회장은 꼼짝없이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으로 그 죄를 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김두한 선생(당시 한독당 국회의원)은 재벌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보았다. 3공 정권과의 야합이 없이 거대한 물량을 밀수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분석한 선생은 국회에서 총리 이하 국무위원들에게 본때를 보이기로 작심하였다. 중앙정보부의 3대 부장 김형욱이 충성을 다하며 무섭게 설치던 시절이었다.
보좌관을 시켜 1919 년 3.1 운동의 발원지 파고다 공원의 변소에서 선조들의 얼이 담긴 인분을 퍼 오게 하였다. 한 말 들이 깡통에 얌전하게 담겨 포장된 파고다 공원의 인분은 다음 날 김두한 의원의 발언 순서에서 사정없이 총리 정일권 이하 박 정권의 각료들의 머리위에 뿌려졌다.
“이 매국노 같은 놈들아! 선조들의 X이나 실컷 맛 봐라!”
난분 한 X물은 고스란히 정일권 총리 이하 국무위원들의 머리와 기름진 얼굴 그리고 고급한 양복위에 뿌려졌다. 그 지독한 냄새가 태평로 좁은 본회의장에 진동하였다.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고 급보를 받은 청와대는 분기탱천하였다는 후문이 있었다. 선생이 마흔 아홉 살 되던 해 일이다. 그 날로 정보기관에 잡혀 들어간 선생은 모진 고초를 겪었다고 세상에 알려졌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선생 자신이 당한 굴욕을 공개적으로 발설한 적은 없었으나 가까운 지인들의 입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 진 것이다. 절륜의 건강을 타고난 선생은 55세에 뇌출혈로 일찍 타계 하였다. 분뇨를 뒤집어 쓴 정일권은 일제의 만주 군관학교 초급장교 출신으로 천수를 다 누렸다.
재벌집의 상품 광고 카피를 들으며 인간의 본질, 인간 집단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본질은 쉽게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며칠에 한 번씩 미뤄 두었던 집안 청소를 할 때마다 걸레를 락스 물에 빨아서 쓰지만 빨아도 걸레는 걸레일 수밖에 없다.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나 인간 집단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본 제국의 형사 나부랭이를 하던 친일분자들이 광복된 조국에서 이승만의 비호를 받고 독립지사들, 민주인사들을 때리고 고문하였다. 그리고 결국엔 일제 형사들에게 배운 대로 그 수순을 따라 마찬가지로 용공의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그 자손들이 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던 민주인사들을 붙잡아다가 모진 고문을 하고 결국엔 용공의 혐의를 씌웠다. 그들의 본질이다. 공부 밖에 모르던 박종철 군을 물고문하여 절명케 하고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하던 그 가증스럽던 얼굴들은 영락없이 일본의 극우분자들을 닮았다. 정신대 만행도 모르쇠. 생체실험도 모르쇠. 남경 대 학살극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의 극우들은 얼마나 뻔뻔스러운가. 그 본질은 군국주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그대로이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곤경에 처 했다. 서둘러 당명을 바꾸고 한나라당 대 개조를 공표하였다. ‘뿌리부터 바꾸겠습니다.’를 공표하였다. 말하자면 한나라당의 본질을 바꾸겠다는 공언이었다. 경제 민주화와 대 탕평 인사정책은 그래서 나온 선언이었다. 관피아 척결. 낙하산 인사 근절. 공직 기강 확립. 국민 안전제일 정책이 발표되었다. 본질을 바꾸겠다는 대 국민 약속이 선거 승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본질이 바뀌었을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본질이 쉽게 바뀌지 않은 까닭이다.
교황 방한 일정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여 오늘 새벽 몇몇 보수언론의 토론방을 살펴보니 교황의 좌파적(?) 발언을 성토하거나 세월호 유족들을 폄하하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교황이 한국의 좌파들을 선동하러 한국에 왔다는 극언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어느 보수언론의 논설위원은 교황의 좌파경제 논리는 보람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 본질이 어디 가겠는가? 김대중, 노무현 재임 대통령을 극렬히 비난하던 그 수법 그대로 교황을 비난하는 것이다. 종 주먹으로 터진 둑을 막는다고 막아 질 것인가. 그들의 우 극단으로 몰려 있는 이념은 본질이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생전의 이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 자연의 이치를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극우성향의 국민들을 간곡히 설득하는 칼럼을 한겨레 언론에 올리신 바가 있다. 그러나 왼쪽 귀를 꽉 막고 있는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더욱 더 중도정책을 펴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극렬히 비난 하였다. 노무현 정권을 마지막으로 민주당 세력은 내리막 길을 걷게 되었다. 장차 그들이 국민의 염원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영희 선생은 한국인들의 이념 논쟁을 개탄 하면서 루쉰의 수필 한편을 자주 인용하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철벽 속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는 민중을 살리겠다고 굳이 두들겨 깨우는 일이 잘하는 일일까? ”
오직 민중에게 진실만을 알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난의 지적 활동에 전념하신 이영희 선생도, 루쉰 선생도 철벽 속의 민중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한 인간의 본질. 한 집단의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만 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 본질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일이 또 터졌다. 날 만 새면 사고가 터진다.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인 새누리당의 경기도 지사의 아들이 군대 폭력으로 입건 됐다고 한다. 아들의 아비는 백배 사죄하였다. 자식을 잘 못 가르친 죄를 절감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 폭력의 이유를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나의 군 생활 경험으로 봐서 근본 원인은 지휘관들의 탓이다. 특정 병사의 훈련 성과가 좋지 않거나 군 생활이 익숙하지 못하면 하사관 이상 지휘관이 가르칠 일이다. 벌칙을 줘도 지휘관이 줄 일이다. 같은 병사가 왜 나서나? 선임 병의 권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