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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는 눈물로 보내는 세월! 고희가 된 이날까지 그리도 사랑했던 내 조국의 끝없는 질곡에서 오늘도 피눈물로 절규한다. 위정자들이여, 그리도 많은 것들을 거머쥐고도 아직도 모자라 저 처절하게 울부짖는 민중들의 아우성 소리를 못 들은척하고 있는가? 그쯤이면 단 한번만이라도 울부짖는 백성들의 고달픈 하소연에 귀 기울이고 무엇을 원하는가를 들을 수도 있으련만....
부귀와 영화를 대물림하려는 집권 위정자 당신들의 그 꿈이 이 나라의 밑바닥 서민들에게는 가슴에 날아드는 비수가 되고 있음을 모르는 것인가,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것인가. 뒤돌아보라. 그대들의 마음을 단 한쪽만이라도 비우고, 시야를 저 멀리까지 하여 이 산하 저 고을을 둘러보면 보이는 게 흐느끼는 민중들인데 왜 그대들은 모른 척 하는가?
안타깝고 애처로운 내나라 내 동포들이여! 우리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쓰러지지 말고 버티어주오. 저들이 제아무리 몸부림치며 탐관오리의 본질을 드러낸다 하여도 끝내는 사라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지 않던가. 피어난 꽃은 결국 시들기 마련임을 믿고 저들이 시드는 그날을 지켜보라. 저들이 더 가지겠다고 몸부림치는 그 더러운 아귀(餓鬼)다툼을 지켜보노라면 언젠가는 결국 자기네들끼리, 싸우고 피 흘리며 사라져 갈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우리의 격언이 있는데 어이하여 아랫물만 흐리다고 다그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위에서 제대로 훈령하고 모범을 보인다면 밑에서 따라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1960년대 초 국민학교 시절에 한국 위인전기전집에서 이순신 장군의 전기를 앍은바 있다. 그때 내가 그 책에서 받은 교감은 오늘날 영화“명량”이 주는 감동 이상의 것이었다. 왜 앞서서 솔선수범하는데 따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나는 그럴지언정 너는 그러지 말고 잘 하라는 어설픈 지시를 따를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져 나오는 비리와 부정부패는 결국 윗사람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위정자들이 썩어문드러진 이 나라의 서글픈 질곡에서 한숨과 통곡으로 세월을 보내는 서러운 민중들의 하소연은 대답 없는 밤하늘의 메아리로 여울져가고 있다. 창백한 얼굴로 거리를 헤매는 서민들의 말없는 아우성은 뜬 구름 되어 흩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언제인가 산천을 떠돌던 원한의 메아리와 서민들의 말없는 아우성은 집권위정자들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올 것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무슨 의미의 말인지는 자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성경에는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라고 하였다. 집권 위정들은 지금 제거하기 힘든 가시나무 씨앗을 심고 있으니 그 씨앗이 나고 자라면 헤집고 빠져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가시나무의 숲에 가쳐 헤어나지 못하는 고난의 세월을 살아갈 것이다. 더러웁고 추악한 행태로 살아온 세월의 앙갚음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옛 서적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종신행선이라도 선유부족이요 일일행악이라도 악자유여(終身行善善猶不足一日行惡惡自有餘)라 하였다. 한평생 착한 일을 베풀어도 착함은 모자람이 있으며 하루 악함을 행하였을지라도 그 악함은 영구히 남는다는 말이다.
자신들이 이 나라의 위정자로서 얼마만큼이나 백성들의 안위를 위하여 일해 왔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스스로 무언가 느낌이 있을 것이다. 행여라도 이 글을 읽은 위정자가 있거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 나라에 당신들의 후손이 살아갈 수 있는 참다운 정책을 시행하였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라. 서민이 살아가는 서럽고 안타까운 질곡이 왜 만들어 지고 있는가를 되새겨 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