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과 뜨거움, 이성과 감정. 하루하루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며 머리와 가슴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가슴을 적신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이 샘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꾹꾹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르는 것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작금의 대한민국은 정의는 고사하고 사회공동체를 합리적으로 기능케 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황량한 볼모지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봤다. 세 아이의 아빠인 필자가 유가족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내와 몇번이나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결론은 언제나 하나였다.
'살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라면 차갑고 냉정한 이성과의 교감을 기대하기란 지극히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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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분신이자 나의 모든 것인 아이가 죽었다, 그것도 영혼없는 어른들의 무능과 태만, 무책임 때문에. 침몰해 가는 배 안, 아이들이 공포와 절망 속에서 애타고 간절하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을 때 이 괴물들은 아이들의 죽음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거나, 상급자의 의전을 신경쓰거나, VIP를 위한 사고 영상의 확보에 열을 올리거나, 딴 짓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성이 작동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저 시점에서 이성은 세월호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차디찬 깊은 바다속으로 완전히 가라 앉고 말았다.
필자라면 벌써 진작에 터져나왔을 극한의 분노를 유가족들이 억누르고 있는 모습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념과 슬픔이 빗물처럼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어버린 슬픔과 극악무도한 괴물들이 만들어가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 속에서도 유족들은 마지막 남은 여력을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특별법에 걸고 분을 삭이고 또 삭이고 있는 것이리라. 그나마 남아있던 심지마저 다 타버리고 나면 저들은 과연 무엇으로 삶을 지탱해 나갈 것인가. 아프고 또 아프다. 이보다 더 애절하고 처절한 모습이 또 어디 있을까. 우리는 이 애절함과 처절함을 기억해서 반드시 후대에 전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며칠 전 SNS를 통해서 한 영상을 전송 받았다. 이 영상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아마도 이 영상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견공에게조차 있는 그 무엇이 우리 사회의 리더들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의 불행이라면 불행일 지도 모르겠다. 견공보다 못한 인간들이 주류사회에서 활개치는 세상이 정상적이 아니란 걸 모르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각계각층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반국민은 물론이고 시민단체, 종교계, 연예계, 심지어 학생들까지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사회 공동체의 보편적 감정은 한 사회의 현안이나 논제들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판단의 기준으로 매우 유효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것의 의미는 아주 단순명료하다. 첫째 세월호특별법의 핵심은 사건의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방점이 놓여 있어야 한다. 둘째 이를 위해서는 진상조사위원회에 반드시 수사권과 기소권이 필요하다.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이 명징한 원칙 앞에 사법체계가 무너진다느니, 유족들이 보상과 배상에 더 관심이 많다느니, 사회불순세력들이 개입되어있다느니 따위의 헛소리는 차리리 소음이며 공해다.
대통령과 정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과 유가족, 다수 국민의 민의를 직시해야만 한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야말로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유족들이 붙잡고 있는 마지막 지푸라기이다. 뿐만 아니라 그래도 정의와 상식이 남아있다고 애둘러 자위하고 있는 다수 국민들이 이 나라에 기대하는 심리적 마지노선일 지도 모른다. 이마저도 무너져 버린다면 도대체 이 나라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살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 이는 세 아이의 아빠인 필자를 포함한 이 시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모든 부모들의 자조이면서 동시에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자들에 대한 경고다. 정치권은 유가족과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라, 반드시. 이는 보편적 상식을 가진 다수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