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공생활 중 십자가 형을 받기 전 가장 극적인 부분들이 성서엔 몇 군데가 있습니다. 이중엔 예루살렘 입성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해방의 기대와 기쁨을 갖고 사람들은 예수를 맞으며 환호합니다. 그가 체제를 뒤엎어 주기를, 그리고 새로운 왕이 되어, 로마 제국의 비호를 받아 온갖 횡포를 저질렀던 헤로데의 독재 정치를 끝장내 주기를 바라며, 작은 칼을 숨길 수 있는 칼집의 의미로서의 종려나무 잎사귀를 흔들며 '우리는 당신의 명령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나 예수는 민중의 기대를 배반합니다. 예수의 길은 비폭력이며, 평화의 길. 그를 열광하며 맞았던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배신감에 치를 떨며 빌라도 총독 관저 앞마당에 모여 외칩니다. "그를 죽이시오! 바라빠를 살려 주고 그를 죽이시오!"
그러나 예수의 비폭력을 통한 더 큰 저항의 정신은 결국 체제 뿐 아니라 시대를 뒤엎고 맙니다.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트 교의 숨은 저항의 정신들이 주류 사회로까지 유입되자, 결국 로마는 이를 체제 안으로 끌어들여 보다 정교한 고도의 탄압이라 할 수 있는, '세속 권력에의 욕망'을 크리스트 교 지도자들에게 주입시키며 그 저항 정신을 봉쇄시키고 맙니다. 어쩌면 교황제는 바로 종교와 세속 권력이 타협해 만들어진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 이를 폄훼해도 초대 교황이 성 베드로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 사도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평화 속의 저항, 진리를 위한 희망과 갈구는 크리스트교의 본질을 지금까지 가지고 오게 한 원동력일지도 모릅니다. 또 우리가 알 수 없는 저 죽음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도 종교는 존재하지만, 적어도 그 죽음의 세계 이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때로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정의와 평화와 창조 질서에 대한 선포를 용감하게 할 수 있는 순교자와 예언자들을 낳아 왔습니다.
성경에 보면, '죽은 자를 살린 기적'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 신약 요한복음서 11장은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십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마리아의 남동생인 라자로의 죽음을 보고 인간적인 애끓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던 예수님은 무덤에 가서 기도를 하고선 '장사한 지 나흘이 된' 라자로의 이름을 부릅니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그 한 마디에 라자로는 장례를 위해 묶었던 수건과 천을 온 몸에 그대로 맨 채로 나옵니다. 예수님이 그 천을 풀어주라 하십니다. 이 기적 이후로 바리사이 등 기득권층들이 예수의 살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고 복음 사가는 전합니다.
사도행전 9장 36절부터 끝까지의 내용은, 사도 베드로가 바로 자신의 스승 예수처럼 죽은 도르카스라는 그리스 이름을 가진 '타비타'라는 여성 신자를 살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대 교황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죽은 사람들을 이렇게 살려낸 기적들. 이것이 과학적으로는 물론 이해가 안 되는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기적이 '삶에 다시 불을 지피는' 행위였을 것이며, 그리스도 교를 따를까 말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행위(또는 그냥 퍼진 이야기라도) 였을 거란 사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광화문의 시복식장으로 향하던 길에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이들을 격려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권, 한국의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사람들은 어떻게든 묻어 버리려 했던 그 세월호. 유족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요구를 참람하기 그지없는 언어로 난도질하여 죽이려 했던 그들의 음모 속에서 꺼져가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희망은 교황의 말 몇마디와 따뜻한 포옹과 입맞춤에 다시 부활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한국을 방문한 교황이 일으킨 가장 큰 기적입니다. 무관심의 바다에서 죽어가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살림으로서 세월호 사건 자체를 다시 수면 위로 꺼내 놓는 그야말로 절묘하고 엄청난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유가족들의 편지를 받아 주머니에 챙겨 넣은 교황의 행동은 그야말로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가 일으킨 기적과도 같은 일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이런 기적에 대해 우리 정치권의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은 어떻게 대응할지 그림은 솔직히 나옵니다. 지금 당장 교황 방문으로 인해 희석된 정권의 정통성 시비에 대한 문제를 가라앉히려 할 것이고 정치적 효과를 최대한으로 누리려 할 것이지만, 이 뜨거운 세월호 정국에서 과연 제대로 된 정부라면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이를 차단하려 애쓸 것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참람된 언사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며 언제 교황님이 왔다 갔냐는 식의 행동들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이 불러일으킨 세월호에의 관심은 국민 하나 하나의 가슴 속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그들의 계산과는 상관 없이, 그동안 솔직히 관심 바깥으로 밀려 있었던 세월호가 다시 국민의 가슴 속에서 부활함으로서 이 정권을 궁극적으로 심판할 수 있는 불꽃을 피워 놓은 것입니다.
국민의 가슴 속에서 일어난 이 기적들이 더 커다란 기적의 불꽃으로 타오르길 바랍니다. 역행하고 있는 역사가 다시 제대로 돌아가는 커다란 기적, 하느님의 섭리가 세상에서 제대로 공현되는, 그런 기적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