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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라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는 사이에, 한국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래스카 크루즈와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뉴스를 흝어보니, 지금으로서는 프란시스코 교황이 일으키고 있는 신선한 행보로 인한 바람이 한반도를 덮고 있는 것이 보이는군요. 권위, 또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진심으로 힘 없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가슴을 열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지금 프란시스코 교황의 방한 중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물론 열심한 천주교인이라기보다는 설렁설렁 성당에 나가 미사만 하고 제게 주어진 작은 일 하나를 성당에서 맡아 하는 것만으로 신자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엉터리에 가까운 신자이긴 하지만, 제 스스로가 천주교인이라고 남들에게 이야기하고, 식당에 혼자 앉아 밥을 먹더라도 성호를 '크게' 긋고 먹을 정도의 자부심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교황께서 보여주시는 행보는 제게도 남들이 받는 것 같은 감동을 나눠주는 동시에 제가 가진 그 자부심의 토대를 더욱 강력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교황은 절대로 무오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교리상 신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강력한 신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교황이 오류를 범했을 때 그 진폭도 커져 버리고 맙니다. 폴란드 출신의 캐롤 보이티에 대주교가 '요한 바오로 2세'가 되고 나서, 그가 보여준 강력하고 따뜻한 리더십에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는 현실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를 악으로 규정했고 소련의 붕괴에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구 소련이 현실에서 사라지는 것은, 그간 체제 경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오류를 조금씩 바라보며 국민들의 삶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었던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고, 이로 인해 미국은 견제 없는 독주가 가능해진 동시에 지금까지 그들을 거추장스럽게 했던 복지 정책을 바로 던져버렸습니다. 한 마디로 가면을 던져 버린 거지요. 그 결과 세계로 퍼져나간 신자유주의는 결국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이념이 되었고 양극화를 부추겼으며 대부분 세계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황이란 자리가 갖는 '세속적 권력'은 과거처럼 절대적 왕권의 모습은 아닐지언정 - 물론 세속 권력에 철저하게 당함으로서 생긴 아비뇽 유수 같은 일도 있었지만 - 어떤 형태로든 지속됐다고 봐야 할 겁니다. 현대의 교황들도 자기들의 세속적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녔고, 독재자 파시스트 무솔리니와의 라테라노 조약을 통한 교황령의 확보는 이런 역대 교황들의 세속 권력 의지를 보여준다고 하겠지요. 그리고 교황의 세속적 권력을 가장 넓게 보여준 것이 바로 요한 바오로 2세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성장이 눈에 보였지요. 소련의 붕괴를 이끈 것이 동방정교가 아니라 서방의 로마 카톨릭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할 정도로. 세계 곳곳을 순방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순방들을 통해 자신의 세속적 권력도 직간접적으로 넓혀 갔다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은 의도했든 안했든 요한 바오로 2세의 실수로 인해 일어난 모든 일들을 바로잡고 있는 셈이라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듭니다. 체제가 아닌 사람의 가치에 대해, 현존하는 신정일치의 권력자의 의견이나 행동은 분명히 세상이 진행하는 방향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으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보려 해도, 제가 가톨릭 신자의 입장에서 이걸 바라보는 건 어찌 할 수가 없네요. 자랑스럽고, 감동적입니다. 아프고 쓰라린 현실들을 보듬어 안는 교황성하의 모습이 저를 감동시키네요.
그 역시 정정이 늘 불안했고 가진 자들의 권력이 늘 못가진 사람들을 누르며 쥐어짰던, 그래서 정치가 제 몫을 못하고 오로지 가진 자들의 편만을 들어왔던 남미의 아르헨티나 출신입니다. 이른바 '해방 신학'의 힘이 상대적으로 컸을 것이고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여타 교회들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그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과 세월호 유가족, 그리고 권력자들의 모습은 이미 당신의 고국에 있을 때부터 보아 온 모습일 터. 우리가 일부러 교황께 '생각해달라'고 간청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뒷면을 바라보실 분이라는 것이 마음에 큰 위안이 됩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교회와 권력의 비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다정하고 낮은 자세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을 데워주시고 지금까지 마땅히 우리나라 권력이 해야 할 일들을 당신이 가진 힘으로 치유하시는 저분의 모습을 보면서, 정치란 것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목적이 어디 있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정치란 것이 본질적으로 '힘의 배분'을 말한다지만, 그 중심엔 '다수의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일 수 없습니다. 힘만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라면, 그것이 짐승들이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정글과 무슨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일 수 있겠습니까?
합힘 가진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을 보듬어 안고 나누어주려 하는 것은 종교의 가치이기 이전의 '사람의 가치'여야 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