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어제(14일)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교황으로서는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의 방한이라고 하니 정부로서도 의전과 경호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서울공항에 직접 영접을 나갔고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쓰며 교황을 환대했다. 얼굴엔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80에 가까운 노구의 교황을 살뜰이 챙기는 모습에선 배려와 자애가 배어 나왔다. 또한 박 대통령은 교황을 맞이하면서 고령의 노구를 배려한 각별하고 극진한 영접뿐만 아니라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반한 말의 성찬을 펼쳐 보였다.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주시고 기도해 주신 데 감사드린다"
"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방한하신 이후에 25년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문을 하시게 됐는데 오랜 기간 후의 일이라 국민들의 기쁨이 더 큰 것 같다"
"평소 교황님께서 세계평화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고 활동하시는 소식들을 들어 왔는데 이번에 뵙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
외빈을 맞이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박 대통령이 이날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교황의 방문에 좋은 모습을 연출해 내었다고 평하고 싶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대통령의 모습에 흐뭇해 하거나 뿌듯함을 느껴야 함에도 전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이럴땐 비루한 정치의 속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문외한이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차라리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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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대로라면 25년 만의 교황 방한이 국민들의 큰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을지 의문이다. 교황의 세계평화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헌신을 칭송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갈등 문제와 쌍용차 해고자 문제, 밀양 송전탑 문제, 해군 강정기지 등의 사회갈등을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도 의아하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 등을 위로한 교황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세월호 참사에 먼 산 바라보듯 두손 놓고 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도 역시 설명이 안된다. 대통령의 발언은 세계적 종교지도자이자 평화의 상징적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 교황에 대한 의례적 헌사임을 고려한다 해도 답답하고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국민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제 3자로 빙의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박 대통령은 지금 자신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해야 할 사람은 이국만리에 떨어져 있는 교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박 대통령이다. 남북긴장을 해소하고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남북통일의 기반과 초석을 다져야 할 사람도, 소외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사람도 다른 누구가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인 박 대통령이다. 요즘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다른 나라의 대통령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된다.
상처를 회복하고 치유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온 교황이 이번 방한기간 중 만나게 될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안타깝고 부끄러운 단면들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이며 피해자들이다. 일제 강점기 성노예 할머니, 새터민, 이주 노동자,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제주 강정마을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희생자 가족,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유가족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는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과 사안들이 도처해 만연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박 대통령이 주구장창 주술처럼 되뇌이는 국민 화합과 사회 통합, 국민행복을 위한 요체임을 그녀는 정말 모르는 걸까.
며칠 전 포스팅한 글에서 필자는 자신의 일을 남의 말처럼 하고 있는 대통령을 비판하며
'당신은 어느 나라 대통령입니까?'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 교황 방한에 즈음하여 진지하고 심각하게 대통령에게 제안한다. 교황의 일정에 대통령의 모든 스케줄을 맞추고 교황이 찾아가는 곳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 그가 전하는 말과 행동들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층 나아가 상심에 빠져있는 국민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 단기과외라도 받아보기를 강력하게 제안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아픔과 상처를 돌아볼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이는 쓸데없이 경내에 머물러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자 억만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