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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12척의 전함이 남아있나이다. 적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신이 살아 있는 한 왜놈들은 절대로 조선의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330척이나 되는 왜군의 전함 앞에서 이순신 장군이 한양으로 보낼 서신에 쓴 말이다.
지금 이순신 리더십 돌풍이 거세다.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며 연일 최고 관람객 수를 갈아치우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누구보다도 익숙한 인물, 강력한 군사력의 상징 ‘성웅 이순신’이 다시 한 번 강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전라남도 해남 울돌목에서 330척이나 되는 적군의 배에 맞선 기적 같은 명량해전. 그는 어떻게 불굴의 의지로 승리를 이끌었는가. 왜 세계 해전(海戰)사에 길이 남을 명장으로 남게 되었는가. 420년 전 그는 강철 같은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했는지 지금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먼저,이순신 장군은 ‘직진의 리더십’을 발휘한 장수였다.
승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의 사전에 후퇴란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죽을 힘을 다하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확고한 자기 확신은 겁에 질린 부하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춤하는 장수들 앞에서 가장 먼저 적군을 향해 돌격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 병사들은 ‘죽을 각오로 돌진하면 살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둘째, 독서를 통해 지식 역량을 키워낸 양수겸장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무술 실력과 더불어 훌륭한 지략을 발휘한 명장이었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끊임없이 훌륭한 장수로서의 밑거름을 닦은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읽으며 국방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다양한 병법들을 습득하였다. 또한, 독서를 통해 일본 수군의 전투 전략을 파악하고 거북선을 복원하여 총통을 장착한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일본 수군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셋째, 항상 부하들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통합의 리더였다.
이순신 장군은 목숨이 위태로운 적장에서는 엄하고 무서운 지도자였다. 하지만, 평소에는 항상 부하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수였다. 부하 장수들이 먼저 찾아와 함께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기를 꺼려하지 않을 정도로 열려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전장에서도 부하들이 현재 상황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하였다. 유네스코에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된 ‘난중일기’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과 소통하기 위해 고뇌하는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넷째, 성웅 이순신 장군은 중요한 순간에 강력한 결단력의 소유자였다. 330척의 적함이 출연하자 군영을 이탈하는 장병들이 많이 생겼다. 한 번은 진지를 탈영하다 붙잡힌 병사가 있다는 보고를 받자 이순신 장군은 곧장 달려간다. 이순신 장군을 보고 겁에 질린 병사는 “주변 병사들이 죽어갔습니다. 저도 죽을 것만 같아 도망쳤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이순신 장군은 “더 할 말이 없느냐.”라고 한 뒤 바로 목을 친다. 군법의 중요성을 병사들에게 전하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라는 비장한 말을 남기고 전함을 이끌어 전투로 나간다. 필요에 따라서는 가혹하리만큼 엄정하게 행동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순신 장군은 스스로 세운 원칙을 어떤 일이 있어도 꺾지 않고 자기 확신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실천의 리더라고 볼 수 있다. 부하 장수들과 국왕까지 해전을 포기하라고 말할 때, 혼자라도 적진으로 돌격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해군제독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반면, 이순신 장군은 두려움과 책임감으로 인해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의 이면에 숨겨진 뒷모습이다.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던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작금 책과 영화, 감히 이창호스피치연구소에서 강의를 통해 “이순신 리더십”을 다시금 재조명하고자 한다. ‘성웅’(聖雄)이 가지고 있는 열정, 신념, 신뢰, 병법, 품성 등 우리 역사상 최고의 장수에 대해 알아볼 새로운 기회이다.
<이창호:이창호스피치홀딩스 CEO/대한명인(연설학).신지식인(교육)/한국청소년봉사단연맹 부총재/에듀윌 자문위원/국제구호기구 홍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