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경제활성화 법안들의 조속한 법안통과를 촉구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통해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냐고 자문해 봐야 할 때"라며 4월 국회 이후 단 한건의 법안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정치현실을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만 놓고 보면 대통령과 정부가 민생안정과 일자리 창출 등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국회가 나몰라라 하고 있다는 투다. 대통령의 말이 맞다면 이 나라의 국회는 당장 멍석말이라도 당해야 할 판이다. 국가경제는 점점 힘들어지고 민생은 천길 낭떠러지로 향해 가는데 하루빨리 민생법안들을 처리해야 할 국회가 손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간 큰 낭패를 당하기 쉽상이다. 우리는 박 대통령의 영혼이 국정최고통수권자의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특별함을 지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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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이후 국회가 단 한 건의 법안조차 처리하지 못한 근본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월호 참사에 있다. 무려 300여 명의 고귀한 생명이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목숨을 잃은 국가적 대참사 앞에 국민은 물론이고 정치권 역시 충격과 혼란 속에 빠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황당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4개월 여의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충격은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사건에 대해 그 무엇하나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국정조사는 표류하고 있고, 세월호 특별법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과 이 정부에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데에 있다. 참사의 원인과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 속에서 저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앙 앞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할 최선은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정상적인 대통령과 정부라면 절망과 상심에 빠져 있을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한편 책임있는 자세로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사태수습과 사후대책들을 제시하며 신뢰를 심어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나라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에선 이처럼 기본적인 것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저들의 안중에는 유가족도, 국민도 없었다. 오히려 저들이 최선을 다했던 것은 사건의 불똥을 차단하고, 진실을 은폐하며, 대통령의 행적을 감추는 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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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경제와 민생 등의 생활밀착형 어휘를 구사하는 이유는 대개 정치적 난재들을 벗어나기 위한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경제와 민생을 언급하며 국회를 압박한 속내는 세월호 국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성격이 짙다. 최근 조선일보와 산케이 신문의 보도로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박 대통령이 8월 중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주문하며 언론플레이를 펼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 대통령의 언행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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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서 박 대통령은 철저히 제3자의 입장을 고수했다. 국정 최고통수권자이며 최종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주변인으로 머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두에 언급했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덕분이었다. 절대권력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심판자의 기능만 행사하고, 중재자의 역할도 없고 책임의식마저 결여되어 있다면 이는 대통령제에 대한 심각한 자기기만이자 부정이다.
대통령제의 핵심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책임정치의 구현에 있다. 대통령제 하에서 대의민주주의는 대통령이 이와 같은 책임정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인식을 갖추고 있을 때 정상적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 반대의 경우라면, 즉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책임이 아닌 자의적 권력행사로 이해했을 경우 민주주의의 비극이 시작된다. 전두환도 그랬고, 이명박도 그랬다. 아니 김대중·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을 제외하면 국민은 언제나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권력자는 위임된 권력을 통치의 수단으로 오만하게 악용해 왔다. 이것이 대한민국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벌어진 비극의 알파요 오메가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 비극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다.
오늘 흥미롭게 읽은 기사의 제목인
'朴, 여의도에 직격탄..."지금 정치가 국민 위해 존재하나"'가 필자를 매우 당황스럽게 만는 것은 살펴본 바와 같이 대통령의 대통령제에 대한 철저한 자기부정과 왜곡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지적처럼 작금의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런데 국민이 없는 정치를 조장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며 정치를 통치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주체가 과연 누구인지 박 대통령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일을 남의 말하듯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주변인들을 참 피곤하고 고단하게 만든다. 박 대통령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통령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물론 박 대통령의 이와 같은 상황인식과 발언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정원의 대선불법개입, 최악의 인사참사, 각종 대선공약 파기,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세월호 참사 등 정치 사회적 현안 마다 그녀는 철저히 제3자의 입장에 머물며 이들을 자신과는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해왔다.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통수권자로서 참으로 한심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책임정치가 구현되지 못하는 대통령제는 위험천만이다. 대통령에게 국가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제도의 특성상 책임정치의 실종은 국가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대의 민주주의의 순기능을 약화시키며 민주주의의 퇴행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버지가그랬던 것처럼 위험천만한 대통령제의 한계와 위악을 박근혜 대통령이 대를 이어 보여주고 있다는 것, 명백한 역사의 퇴보이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