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반한파 언론인 전 산케이 한국 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産経新聞ソウル支局長を「出国禁止に」 韓国で報道
-내가 말(馬) 도둑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나는 도둑질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재판관의 몫이다. -안톤 체호프-
나라가 불안스럽고 시국이 어수선 한 것은 국가적으로 선결해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으로 해결되지 아니하고 시끄러운 탓이다. 나라의 국토가 작은 탓인지 나라의 문제가 바로 개개의 국민에게 목전에 다가 온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외국의 일개 언론사와 민 형사상 시비를 벌이는 것이 바람직 한 일인가?
새벽에 잠이 깨어 눈을 감고 있다가 문득 러시시아의 소설가 안톤 체호프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70년대 젊은 시절 극장에서 보았던 흉악한 보석강도범의 얘기를 다룬 프랑스 영화의 메인타이틀이 뜨기 전에 도입부에 인용된 말이다. 기가 막힌 구절이라 생각되어 그 자리에서 몇 번 외웠다. 이 구절이 머리 한 구석에 처 박혀 있다가 수 십 년 후 이 나이 이 시점에 불쑥 떠오른 것이다.
문학 작가는 도둑질 행위 자체를 법리적으로 논하기보다 도둑질이 있을 수밖에 없는 절도범 개인의 제반 환경, 사회적 상황 그로서 비롯되는 총체적 인간사회의 본질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산께이신문(産經新聞)의 보도 한 꼭지가 느슨해 가던 한일관계의 고삐를 죄는 느낌이다.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것이다. 산께이의 보도에 대한 한국 사법당국의 수사가 시작 되었다. 이어서 외무장관의 구두 항의가 직접 일본 외무성 장관에게 있었다.
그런데 산께이는 항변 한다. 한국의 유력지 J일보를 보고 베낀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똥이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튀게 생겼다. 친정부 보수 언론이 본의 아니게 산께이와 청와대의 분쟁에 끼어들 소지가 보인다. 검찰이 산께이의 진술을 받은 바에야 J일보의 편집국 책임자와 해당 기자를 참고인으로라도 소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라면 그 다리몽둥이가 성치는 못할 일이었다. 그러면 J일보와 그 기명 칼럼을 쓴 중진 기자는 잠 못 자는 여름밤이 이어지게 생겼다. 편집국은 아연 긴장 국면이 조성 될 것이다. 얽히고설킨 2중 3중의 복합적 분쟁이 예견된다. 여기다 일본정부까지 끼어드는 날에는 어떻게 될까? 언론의 속성상 미국과 서구의 언론사들이 또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그 경우에 예상되는 보도 사태는 과연 우리정부에 유리하다고 만 할 수 있을까?
한국정부가 산께이 신문의 보도 기사 한 꼭지 때문에 민형사상 처벌 하고야 말겠다고 방침을 세웠다면 한국적 대 언론관이기는 할망정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관점에서는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명실상부하게 언론자유가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일본 언론의 패러다임으로는 이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자칫 전 일본 언론사들이 언론자유를 수호 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보통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것은 굳이 나서려면 언론중재 위원회가 나서 정정보도를 협의하거나 요청할 문제였다고 본다.
배우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일본말을 전혀 모르지만, 산께이신문이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언론으로 유명한 것 정도는 안다. 또 요즘은 인터넷 번역기능이 있어 어설프게나마 그들의 논조를 알아 볼 수 도 있다. 산께이 신문은 민족주의, 반공주의, 반한주의로 유명 하다.
오랜 세월 동안 교토 통신 한국 특파원을 거쳐 산께이 지국장까지 지낸 구로다 가쓰히로는 한국인들에게 유명하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오랜 동안 악의적 반한(反韓) 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시사 토론회에 나와서도 반한 또는 한국 비난, 비판 발언에 거침이 없었다. 그의 말빨을 감당한 한국인 지식인들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워낙 순한 민족이라 지난 수 십 년 간 거리나 식당에서 만난 구로다의 귀싸대기 한 대 때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 만큼 구로다는 만만치 않은 인간으로도 되는 것이다. 그가 철저한 반한파이면서도 한국어를 능숙하게 읽고 말 할 수 있는 것만 보아도 그가 보통의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말 해 준다. 그는 최소한 민족적 감정 때문에 일본어조차 쳐다보지도 않는 나 같은 일차원적 인간 하고는 다르다. 구로다는 적을 알아야 제대로 칠 수 있다는 고전적 전략을 충실히 실천하는 이차원적 인간이다. 70대 노인네가 된 그는 요즘 한국의 모 대학교 강의까지 나간다고 한다.
구로다의 반한 정신을 이어 받았을 가토 다쓰야 산께이 한국지국장이 한국 검찰에 가서 진술 하는 것을 겁낼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한국검찰에 기소되는 것을 두려워 할 인간도 아니다. 가토의 배후에는 일본의 민족주의, 극우주의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받쳐주는 반 한파 일본국민들이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산께이를 비롯한 거대한 언론조직인 극우 언론들이 받치고 있다. 한마디로 벌집중에도 말 벌집에 해당한다. 그에 비하면 한국정부와 긴장 관계에 있는 아베 극우정권은 별 것도 아니다. 가토 다쓰야의 조사와 기소는 양국의 민족적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세월호가 속절없이 침몰 된 날짜는 4월 16일이고 이 날을 컴퓨터로 찾아보니 수요일 이었다. 당연히 청와대 휴무일이 아니다. 청와대가 휴무가 아니면 대통령도 일상적 근무 시간이다. 더구나 오전 9시 대통령 출근 전 또는 후에 일차 서면보고가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국가적으로 비상사태와 다름이 없는 사안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위보다 중한 국가적 사안이 어디에 있겠는가? 대통령 취임 선서에도 국민을 보호 하겠다는 대 국민 맹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서실장은 그로부터 오후 5시 까지 대통령이 어디에 소재 했는지 ‘모른다’고 국회에서 증언하였다. 이 증언이 불씨를 불렀다. 이를 납득할 국민은 없다. 그러니 언론이 이를 놓칠 리가 없는 것이다. 평일 날 최고위 공직자가 외부 행사가 없다면 청와대에 소재 했을 수밖에 없을 일인데 비서실장이 몰랐다고 하니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 된 것이다. 더구나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그 시간대에 국정 최고 책임자의 소재를 청와대를 총괄하는 실장이 모른다니 이것은 말이 아니다. 천만 다행으로 아이들 수 백 명이 안전하게 구조 됐더라면 모를까 모두 비참하게 바다에 수장되었다. J일보의 그 중진 기자가 기명 칼럼으로 문제를 지적한 것은 의아해 하는 국민을 대신하여 언론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박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언론들, 기명 칼럼니스트들도 하지 못한 일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생겼다. 산께이의 일차 보도가 나갔을때, 그보다 먼저 조선일보의 일차 기명 칼럼이 있었을 때, 청와대의 입장에서는 책임 있는 관료가 당사자를 만나 합당한 설명을 하고 칼럼의 수정이나 해명성 보도를 요구 했더라면 더 이상 문제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할 일이 한 두 가지이겠는가? 집무실에서 긴급 국정현안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에 죽 현장 보고를 받고 있었다고 말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지휘를 하지 못했다는 여론의 지적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일본의 극우적 언론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상대로 대결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한 두 곳을 빼고는 그렇듯 극렬한 반정부적 보도와 논조를 유지하던 대 부분의 국내 언론들에 대하여 속수무책 이었던 것은 언론자유라는 헌법하의 큰 틀 속에서 언론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외국 언론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정부의 위신에 관한 문제이다. 청와대 실무진들의 불민한 언론 대책을 탓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사설 언론사에게 빰 맞고 그 나라 외무장관에게 항의 한다는 것은 난센스이고 언어도단이다. 그렇다고 아베 정부가 산께이에 대하여 광고탄압을 할 것인가, 언론 탄압을 할 것인가? 지금의 한일 긴장관계로 본다면 아베가 변소에 가서 웃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북한 당국이 김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