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달 7일 국회운영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당시 7시간 동안의 행방을 묻는 박영선 원내대표의
질의에 "박 대통령의 위치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비서실장이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는 비상식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같은 달10일 세월호 국조특위 기관보고에서도
역시 "정확히 모른다. 대통령이 경내에 계시면 어디에 계시던 있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다. 박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바보는 없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며 365일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그 마음까지 읽어야 하는 것이 바로 청와대 비서실장이란 자리다. 24시간 지근거리에서 밀착 경호가 이루어져야 하는 대통령 경호의 특성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위치를 비서실장이 몰랐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동선과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는 무능과 태만을 넘어 명백한 직무유기다. 그러나 김기춘 비서실장이 무능과 태만, 직무유기를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그는 세월호 참사 당일의 대통령 행적을 추궁하는 정치권과 언론 및 여론으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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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당일 국가안보실은 박 대통령에게 오전 10시에 3차례에 걸쳐 서면 보고, 10시15분에 7차례 유선 보고를 했고, 청와대 비서실은 박 대통령에게 '구조상황 보고서' 등 11차례에 걸쳐 서면 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청와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은 오후 1시7분 경 368명을 구조했다는 내용의 서면 보고를, 국가안보실장이 오후 2시50분 경 구조인원을 166명으로 정정한 내용을 유선 보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상황을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은 이날 10시경에 세월호 침몰에 대해 처음 인지했고 이후 5시 10분 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7시간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직접대면 보고 없이 유·무선 보고를 받은 셈이 된다. 건국 이래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박 대통령이 중대본에 방문하기까지의 7시간 동안 단 한차례의 대면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기가 힘이 듭니까"라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박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과 사고 상황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맨정신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들의 의구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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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방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구름처럼 떠돌아 다녔다. 그 말들 중에는 저잣거리에서나 들을 법한 입에 담기 민망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같은 소문은 국론분열을 일으키고 정쟁을 일삼는 야당과 시민단체 및 종북세력이 양산해 낸 것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의 이날 행적에 의문을 품고 '풍문'에 기름을 부은 당사자는 놀랍게도 대한민국 최대의 보수일간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7월18일자
<대통령을 둘러싼 風聞> 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세간에 떠도는 대통령을 둘러싼 추측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다. 조선일보가 논란을 무릅쓰고 박 대통령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낯뜨거운 칼럼을 기재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칼럼은 그동안 쉬쉬해왔던 박 대통령과 최태민, 박 대통령과 정윤회의 관계를 세상에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 되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은 이후 수면 아래로 잠수를 탔다. 집권여당과 청와대의 찰떡 공조 속에 대통령의 묘연한 행방은 철저히 베일 속에 가려졌다
. "대통령의 사생활일 뿐"이라는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과
"대통령의 동선은 국가안보"라는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의 어이없는 능청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자들에게 아무리 상식의 잣대를 들이민다 한들 없는 상식이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는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란 자는 국가 비상시국에 7시간이나 대통령의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집권여당의 원내대표와 중진의원이라는 자는 '똥'과 '된장' 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풍경이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보편적 상식의 영역을 뛰어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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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5대 신문 중 하나이자 대표적인 우익신문인 산케이 신문은 며칠 전 박 대통령의 사고 당일 행적을 구체적으로 다룬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의 칼럼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풍문'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기사는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부끄러운 내용 일색이다.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어제
"입에 담기 부끄러운 걸 기사화했는데 (산케이 측에)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끝까지 묻겠다"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필자 역시 산케이의 기사내용이 매우 불쾌하기 그지없다. 타국의 국가원수에게 이와 같은 (확인되지 않은) 모욕적 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결례도 이만한 결례가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산케이 신문사에 대해 반드시 끝까지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신문사의 논조를 고려하더라도 증권가 찌라시에나 등장할 선정적인 가십성 기사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망측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게다가 국내의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까지 박 대통령의 의문의 7시간에 대한 모욕적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데도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그날의 행적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불가의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다.
의혹은 통상 두가지 경우에 발생한다. 의심스러운 행위를 스스로 유발하거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퍼트리거나.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박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 세간의 의혹들은 특정세력이 특수한 목적을 위해 가공한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과 청와대 스스로 양산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할 수 있는 골든타임에 국정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 알권리'를 거론하기 이전에 이는 대통령의 직무에 관한 일이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혹 제기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 및 집권여당은 입을 맞추기라도 한듯
'모른다', '대통령의 사생활', '국가안보' 등의 진부한 멘트를 섞어가며 박 대통령의 행적을 함구하고 있다. 그리고 급기야 외신에서 낯부끄러운 기사까지 내보내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단순한 의혹은 이제 합리적 의심으로 발전해 간다.
박 대통령의 당일 행적을 묻는 질문에 답을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상황 자체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주체적인 의사표현의 일환으로 선택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주권 행위인 반면 후자는 선택권 자체가 결여되어 있는 피동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 그리고 박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전자가 아닌 후자의 전형적 행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떳떳하다면
'모른다', '대통령의 사생활', '국가안보' 따위의 구질구질한 변명이 아니라 사건 당일의 정확한 행적을 밝히면 그뿐이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을 잠재울 이보다 확실한 방법이 또 어디에 있을까.
외신에까지 소개된 박 대통령의 풍문으로 국격이 땅에 떨어지고 국민들의 자존감이 이만저만 상처를 받은게 아니다. 낯부끄럽고 민망하기 그지없는 풍문에 연루된 당사자인 대통령은 오죽 하겠나. 그러나 계속되는 침묵은 세간의 풍문이 사실일 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만 부풀리게 되고, 나아가 합리적 의심을 실체적 확신으로 굳어지게 만들 것이다. 산케이의 기사내용에 대한 청와대의 뜨뜨미지근한 대응과는 별개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세간의 풍문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그날의 행적을 반드시 밝혀야만 하는 이유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