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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언제라고 해서 한 국가에 태평성대(太平聖代)만이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통치자의 역량에 의해 태평성대에서 고난(苦難)의 시대가 되기도 하고, 고난의 시대에서 통치자의 국가운영방식에 따라 태평성대로 되돌려지기도 하는 것이 반복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통치자의 능력 여하에 따른 결론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군부정권의 말로인 문민정부에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철학에 의해 반세기에 걸친 남북 대결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추석선물 꾸러미가 오가는 아름다운 시대를 맞이하였었다. 고(故)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악의적 비방과 총질 없이 우리는 단일민족(單一民族)으로서의 참 모습을 찾아가며 지내왔었다. 서로가 입에 침 튀기며 비방하지 않고 총질 없이 보따리상이 오가는 삶을 살아 온건만도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가.
그러나 보수(극단적)주의가 정권을 잡고 나서 남과 북은 참으로 몰라보게 변하여 버리고 말았다. 상호간에 악의적인 비방과, 힘자랑의 험담으로 날이 새고 해가지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총구가 화약 냄새를 풍길 것만 같은 날들도 차츰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절대 동족간의 적대적(敵對敵)관계는 해소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 자신들만이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남과 북이 갈라선다면 이 나라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한, 지구상의 삼류국가로 전락되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각심해야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의 드래스덴에서 민족통일문제에 대해 선언을 하여 지금 그 구상을 실현코자 기구를 조직하고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쪽만의 생각이지 남과 북 공동의 구상이 아닌 이상 진전에는 많은 문제점이 야기될 것으로 봐야한다. 왜? 무엇 때문에 7.4 남북 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의 그 아름다운 우리민족의 희망문서들을 뒤로한 채 총부리 겨누고 으르렁대는 지경에 이르게 만들어 놓고, 드래스덴의 일방적인 구상을 통일의 금과옥조(金科玉條)인양 실천하려 함은 무슨 의미인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금강산의 우리 관광객이 희생된 점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 사건대로 대화하여 해결할 문제이며, 그 사건 자체를 남북 화해와 통일의 걸림돌로 삼아 대결의 국면으로 유도해 가는 것은 적절한 방안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사건만을 따로 떼어서 해결을 하려고 노력하였다면 사과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보수주의의 한계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 사건을 모두에 연관 지어 전체를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 북과 남의 화해와 협력으로는 정권유지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대립과 반목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보수층을 끌어안고 정권을 유지해 가려는 술책에서 기인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기네 집단의 항구적인 집권을 위해서는 민족의 장래 같은 건, 염두(念頭)에도 없는 파렴치(破廉恥)한 생각이 아닌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박 근혜 정권이 진심으로 이 민족의 통일을 국정철학으로 생각한다면 드래스덴 선언에서 한발 물러나, 7.4공동성명과 6.15 남북(북남)공동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화해와 협력으로 줄달음 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굳이 쉬운 길을 비켜나 어려운 너덜겅 길을 선택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박양자 피격사건을 별도문제로 분리 협상하여 사과를 받아내고, 남북문제는 남북문제대로 풀어나가야 한다.
드래스덴 구상이 남은 임기동안에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닦아놓은 길을 두고 새 길을 내겠다는 이해하기 힘든 정책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론 극단적인 수구세력의 눈치 보기가 힘들 것임은 자명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성 있는 통치자라면 그 정도의 능력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싶다. 자신을 떠받드는 세력들의 눈치 보기가 두려워 민족의 숙원(宿願)을 당차게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이는 참으로 웃음거리의 정책으로 변모하고 말 것이다.
한 시대를 통치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임기 내에서 민족의 숙원사업(宿願事業)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위에서 닦아 놓은 길을 더 넓히고 다져서 마음껏 내달릴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 가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이리함이 바로 이 나라 8,500만 민족을 위하는 길이요 진리임을 모른다면 이는 통치자로서의 능력의 한계로 밖에 볼 수 없다. 함께하는 사람,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만이 절대 진리요 옳은 것만이 아님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멀리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의 소견도 청취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지식인이요 통치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