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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박영선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비대위 체제는 새 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한 과도체제가 아니라 당을 환골탈태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혁신체제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지켜 볼 때 새정치연합이 ‘도로 민주당’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늘 그렇듯 이번 7.30 재·보선 뒤에도 새정치연합은 참패 원인을 자체 분석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당내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친노·486의원 진영에선 야당의 선명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패했다며 진보노선과 대여투쟁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선명 야당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진성준 의원은 야당이 야성을 잃어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는 “야당이 야당으로서 선명성을 잘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있었다”며 “대여 투쟁과 견제에 있어서도 확실히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재정 의원도 “야당이 야당다울 수 있어야 될 것:이라며 ”야당에게 주어진 과제랄까 숙제를 제대로 해결해 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국민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은 11대 4로 참패했다. 그 결과에 대해 국민은 새정치연합의 잘못 때문이라는 견해가 압도적이었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지난 1~2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한 요인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77.6%가 '새누리당이 잘했다기보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잘못해서 이긴 선거'라고 답했다. 반면 새누리당이 잘해서 이겼다는 응답은 고작 9.9%에 불과했다.
그러면 대체 새정치연합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인가.
국민은 야당이 잘못한 것으로 '세월호 반사이익에 의존한 정부심판론'을 가장 많이 꼽았다. 무려 30.4%였다.
명분과 감동이 없는 야권 단일화(25.1%), 지역대표성과 정서를 무시한 전략공천(19.2%)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다. 즉 정부심판론을 앞세운 대여 강경투쟁이 패배의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또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야당은 이념에 경도된 몇몇 강경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에게 믿을 만한 대안세력으로 각인되지 못했다”며 “민생정책을 유연하게 이끌어 갈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런데도 되레 선명한 야당이니 강경한 야당을 주장하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실제 당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물러나면서 486 세대와 친노 강경파의 선명 야당론은 갈수록 확산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으며, 이러다 새정치연합이 ‘도로 민주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즉 친노와 486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안철수 전 대표와 손학규 고문 등을 비롯한 중도 세력의 위축으로 '도로 민주당'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새정치연합에서 손 고문과 안 전 대표를 빼면 남는 건 강경투쟁을 즐기는 ‘도로 민주당’ 세력들뿐이다.
민생을 외면하고 투쟁을 일삼는 무리들이 쥐락펴락하는 그런 정당이라면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새정치연합이 살아남으려면, 정대철 상임고문이 지적했듯이 외연을 넓혀야 한다.
즉 좌로 클릭할 것이 아니라 중도를 포용하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은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 고문을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삼고초려해서라도 당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아울러 ‘안철수 때리기’를 중지하고, 그에게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
손학규 안철수 등 민생문제를 우선하는 중도의 중심축이 무너지게 되면, 새정치연합은 이념문제에 매달리는 친노, 486 등 강경파가 득세하는 ‘도로민주당’이 될 것이고, 그런 정당은 필연적으로 국민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7.30 재보궐선거가 남긴 뼈아픈 교훈일지도 모른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