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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정치를 그만 둔다. 저는 이번 7·30 재보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정치에서는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이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저의 생활 철학이다. 지금은 제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책임정치의 자세에서 그렇고, 민주당(새정치연합)과 한국 정치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그렇다."
7·30 경기 수원 병(팔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지난 31일 오후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세상 모두가 소외받지 않고 나누는 세상, 그런 세상 만들려 했던 저의 꿈 이제 접는다.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의 한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생활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한켠이 아련해 온다.
사실 이번 선거의 패배는 손 고문이 감당해야할 몫이 아니다.
지난 6.4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세월호 참사의 반사이익에 너무 기대서 공천 과정에 상황 판단을 너무 안이하게 한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에게 그 책임이 있다.
실제 새정치연합 공천과정에서 계파성이 그대로 드러났고, 국민들은 새정치연합이 정신을 차리려면 아직 멀었다고 판단해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조경태 전 최고위원이 "이번 전략공천은 일반 당원들과 국민을 우습게 본 데서 출발했다. 즉 오만의 정치"라고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번 공천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신당을 창당했지만 결국은 헌 정치보다 더한 헌 정치를 보여줬다. 자기 패거리를 배려하고 심어주려는 공천, 국민들을 기만하는 공천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대표직에서만 물러났을 뿐,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정계은퇴를 선언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런데 왜 손 고문이 그 책임을 짊어지고 정계은퇴를 선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손 고문의 낙선 또한 김한길 안철수 두 공동대표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손 고문이 출마한 수원 팔달구는 50년간 단 한 번도 야당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내주지 않은 전통적인 여당 텃밭이다. 그래서 ‘수도권의 영남’이라거나 ‘야당후보의 사지(死地)’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지역에 손 고문이 출마를 결심한 것은 여당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새정치연합 깃발을 달고 출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는 ‘선당후사’ 정신으로 기꺼이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김-안 전 공동대표들은 그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삼고초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박지원 의원이 새누리당의 아성인 수원 팔달로 손 고문을 내몰아 결국 낙선에 이르게 한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에게 분노를 표시했겠는가.
물론 ‘제 2의 분당대첩’의 약속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려는 손 고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손 고문은 누가 뭐래도 새정치연합 내에서 수도권을 대표하는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하는 국민들이 상당수다.
그런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어쩌면 무책임한 행동일 수도 있다.
손 고문이 입었을 마음의 상처, 당사자가 아니니 그 아픔을 헤아리는 일이 쉽지 않겠으나 이건 아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름 선전 했다. ‘수도권의 영남’이라는 사지에서 그것도 당 지도부가 이른바 ‘보은공천’ 논란을 자초하는 자충수를 두는 상황이라면 신이 아닌 이상 그 누가 야당 후보로 나서도 결코 이길 수 없다. 그 책임을 오롯이 손 고문이 감당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손 고문은 다시 그를 기다리는 국민 곁으로 돌아 와야 한다. 당장은 아니라도 된다. 이제 20개월 후에 있을 총선 때 당당하게 국민의 선택을 받고 돌아오면 된다. 그러니 손 고문은 정계은퇴가 아니라 그 때까지 잠시 휴식기를 취하는 것으로 생각해 주기 바란다. 필자는 지금도 안철수가 이루지 못한 ‘새정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은 손학규 고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이 믿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