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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동 국립묘지 근처에 가기가 겁이 난다. 그들의 영혼이 나를 붙잡고 왜 이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고 있느냐고 멱살을 잡아 흔들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기가 너무나 안쓰럽고 면구스러워서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한 없이 퇴보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은 물론이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국민들의 한 맺힌 절규를 차마 들을 수 없어 귀를 틀어 막고 솜이불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으니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그 아우성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 있겠는가. 가슴을 저며 오는 쓰라림의 고충을 달래어 봐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수렁 속으로 떠밀리고 있다. 원한을 풀어달라는 세월호 어린 넋들의 절규는 어이 풀어줄 수 있으며, 뒤돌아서서 뜀박질하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누가 막을 것인가?
이리도 처절하게 이 나라를 위기의 수렁 속으로 처박아 버린 장본인들은 느긋하게 물러앉아 살포시 미소 짓고 있으니 오! 절규하는 조국이여! 오! 통곡하는 세월호 의 어린 영혼들이여! 삶에 찌든 서민들의 고통소리여! 간들간들 서민들의 시들어가는 희망이여!
희망을 품고 학수고대(鶴首苦待)하다 실망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서민들의 한탄소리에 산천초목(山川草木)도 흐느껴 우는 이 나라의 처량한 아우성 소리를 저 공룡 같은 여당이 행여 듣는다면 이리도 서럽진 않겠지만 가진 자들을 위한 어긋난 정책을 치켜들고 국민을 살리겠다며 서민의 모가지만 옥죄고 있으니 뉘라서 이 난국을 타개할 것인가.
한 나라 같은 민족이면서 어이해 서민의 삶에는 이다지 무관심인가. 이 나라에서 서민이 이처럼 고통을 받는 것은 부가가치세 때문이다. 하루에 1억을 버는 사람이나, 폐지를 주워 모아 2~3천원을 버는 사람이나 라면 한 개를 살 때면 똑같은 세금을 내야한다.
그렇게 모아진 세금은 대기업을 돕는데 쓰이고 있다. 물론 기초생계 수급자에게도 쓰인다. 하지만 이것이 이 나라 전체의 서민들이 살아가는데 얼마만큼이나 균형 있게 쓰여 지고 있는가. 이 같은 것들을 감독하고 관리해야할 야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여당의 2중대 노릇을 해왔다. 몇 사람의 농간에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하는 척 무책임과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고 결국엔 서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서야 슬그머니 물러나 앉아 있으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희망의 싹마저 잘라버린 상황이 되고 말았다.
살릴 수도 있었던 자식들을 수장시켜버린 진상을 밝혀 달라는 그들의 희망마저 짓밟아 버린 책임을 어이할 것인가. 양심이 있다면 대답해 보라. 자신들의 위상을 돋보이게 하려다 국민들의 희망마저 말살해 버리고 말았으니 어이할 것인가. 그러고도 국민의 세금으로 급료를 타 먹으며 국회의원이라고 뱃지 달고 다닐 면목이 있을까?
일개 촌노도 알고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아니라고 아우성을 쳤건만 결국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이 조국의 통곡소리가 산천을 울리고 있으니 뉘라서 처참함을 느끼지 않으리오.
그러나 당신들의 귓전에는 음악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구려. 소갈머리 없이 자신의 현상유지와 더불어 권위상승을 하려 몸부림치다 이리 되었으니 그래도 밑져야 본전인 셈이니 밑잘게 뭐있을까만, 수천만 서민 대중들의 고통을 덧씌운 죄과는 반드시 받아야 할 것이다.
명색이 정치를 한다는 인간들이 어이 국민의 아우성 소리를 외면하고 무슨 놈의 정치를 한단 말인가. 수천만 명의 서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고 피눈물을 흘리게 한 죄과를 알겠거든 국회의원 뱃지를 반납하고 정계를 떠남이 마당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