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의 눈을 피해 도주행각을 벌이던 유병언의 사체가 발견됐다.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언론을 통해 공개된 유병언의 사체는 충격 그 자체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된 사체는 그의 죽음이 얼마나 비참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사체에서 그동안 사진으로 보아 왔던 유병언과의 접점은 단 1mm도 찾을 수 없었다. 죽은 유병언과 살아있을 당시의 유병언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였을까. 여기저기서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발견된 사체가 유병언이 아니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발견된 사체에서 채취한 DNA가 유병언과 일치한다는 경찰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무리 더운 날씨라고는 하나 불과 18일만에 백골이 드러날 정도로 시신이 부패할 수는 없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평소 술을 마시지 않던 유병언의 사체 주위에서 술병이 발견된 점,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씨에 겨울 외투 차림에 벙거지를 쓰고 있었던 점, 사체에서 유병언의 체형 및 신체적 특징과는 다른 점이 발견되는 점 등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급기야 경찰 내부에서 '발견된 사체는 유병언이 아니다'는 진술이 있었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유병언의 사체가 사람들을 무척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유병언의 사체는 정말 유병언이 맞기는 맞는 것일까. 마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나 나올법한 미스터리한 사건이 지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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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황들이 한둘이 아니니 음모론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발견된 사체의 DNA가 유병언의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경찰의 주장을 믿지 못하겠다는 국민들이 태반이고 보면 이 나라 국가기관의 공신력은 바닥에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민이 국가기관을 전혀 신뢰하지 못하는 이 한심한 풍경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라한 현주소다. 국가기관에 대한 공신력이 무너진 나라는 대부분 부정부패가 만연해있거나 독재가 판을 치는 국가라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유병언의 죽음을 통해 필자는 곪을대로 곪아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처참한 현실을 마주본다.
어쨌든 유병언은 죽었다.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그러나 필자를 놀랍게 만드는 것은 (고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유병언의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죽음에 대응하는 우리사회의 방식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세월호 참사'의 피의자이자 원흉으로 지목받은 유병언의 사체가 발견되자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과 방송이 연일 이 사건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특히 종편은 거의 사생결단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의 죽음과 관련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그를 죽음으로 이끈 '세월호 참사'의 본질과 핵심은 비켜간 채
'자살이냐 타살이냐', '20억 돈가방의 행방' 따위의 선정적 내용 아니면, 미스터리한 죽음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일반 대중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기괴한 죽음과 사체의 진위여부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그의 죽음 이면에 도시리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근본원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병언은 이미 살아있을 때에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었던 유병언의 죽음 앞에 온 나라가 벌집을 건드린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말이지 '호들갑'이 따로 없다. 중요한 것은 (사체가 유병언이든 아니든, 자살이든 타살이든 상관없이) 유병언이 죽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과 그의 죽음마저 기막히게 활용하는 박근혜 정부의 실체에 있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공표되던 날 정부는 대다수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숨통을 조여 올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의료민영화'의 대문을 활짝 열어 제꼈다) |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유병언의 죽음은 의혹투성이의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유병언의 미스터리한 죽음보다 더 미스터리한 것은 실상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법가치를 훼손시킨 지난 대선의 불법부정이 유야무야로 넘어갔다. 각종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역대 최악의 인사참사를 기록하며 국정난맥을 초래한 박근혜 대통령의 실책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세월호 참사', 책임지는 이 하나없는 이 전대미문의 참극에도 이 정권은 꿈쩍도 없다. 미스터리다. 정권의 안위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처지에 있어야 할 자들이 오히려 국민 위에 군림하며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시민의 기본권마저 우롱하고 있다. 역시 미스터리다. 죽은 귀신을 잡아오라며 몇번이나 닥달하는 대통령에게 죽은 귀신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응수하는 한심한 사람들, 국가혁신과 국가개혁을 도모하겠다며 탐관오리들을 등용하는 나라의 국가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그 역시 불가사의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베일에 쌓인 유병언의 끔찍한 죽음보다 더한 미스터리는 이처럼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후안무치하기까지 한 정부가 용인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