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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그러니까 오셔야겠죠?”
그 소리에 놀란 눈으로 멈춰 서서 올려다보는 남자(해국, 박해일 분)와 씩 웃으면서 내려다보는 여자(영지, 유선 분).
이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의 충격적인 반전의 결말이다.
영화 ‘이끼’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왔던 유해국(박해일 분)은 20년간 의절한 채 지내온 아버지 유목형(허준호 분)의 부고 소식에 아버지가 거처해 온 시골 마을을 찾는다. 그런데 오늘 처음 해국을 본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해국을 이유 없이 경계하고 불편한 눈빛을 던진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마련된 저녁식사 자리.
마치 해국이 떠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 같은 마을사람들에게 해국은 `서울로 떠나지 않고 이 곳에 남아 살겠노라` 선언을 한다. 순간,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감돌고, 이들 중심에 묵묵히 있던 이장(정재영 분)은 그러라며 해국의 정착을 허락한다.
이장 천용덕의 말 한마디에 금세 태도가 돌변하는 마을사람들.
겉보기에는 평범한 시골 노인 같지만, 섬뜩한 카리스마로 마을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이장과 그를 신처럼 따르는 마을 사람들. 해국은 이곳 이 사람들이 모두 의심스럽기만 하다.
각설하고 영화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큰그림‘은 영지(유선)가 그린 걸로 보인다.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유해국이 바뀐 마을풍경을 흐뭇하게 보다가 영지를 보면서 서서히 바뀌는 표정, 그러면서 미묘한 미소를 짓는 영지를 클로즈업 하면서 서서히 페이드아웃하며 끝나는 그 장면이 ‘큰 그림’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는 기도원에서 벌어진 집단살해 사건도 있다. 마치 오대양 사건의 집단 죽음을 연상케 한다.
그러고 보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과 영화 ‘이끼’의 줄거리가 묘하게 오버랩 되는 느낌이다.
지난 6월 1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23일 순천경찰서는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박모씨의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신원이 DNA 검사와 지문 채취를 통해 유씨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은 이와 함께 구원파 계열사가 제조한 스쿠알렌 병 등 유류품을 비롯해 변사체가 유병언임이 확실하다고 추정할 수 있는 정황증거와 감정 결과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증거 제시에도 유씨로 추정되는 변사체의 부패 상태와 유류품 등 주변 정황 등을 들어 각종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씨의 시신은 발견 당시 백골이 드러나고 머리카락이 분리될 만큼 부패가 심해 신체 형태로는 신원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5월 25일 순천 송치재에서 달아난 것으로 알려진 유씨가 아무리 날씨가 더웠다 하더라도 불과 18일 만에 백골 상태의 변사체로 발견된다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 첫 번째 의문이다.
경찰은 유씨 시신을 발견했을 때 신체의 80%가 썩어 뼈가 드러난 백골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옷에 덮인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뼈만 남았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시신이 발견된 현장의 잡초가 죽어 있는 상태를 근거로 최소한 6개월 전에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더구나 유씨가 여행용 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현금 20억원의 존재도 오리무중이다. 유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는 여행용 가방은 물론 현금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유씨의 유류품 중에서 생막걸리와 보해소주 빈병, 유기질 비료부대가 발견된 것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보해소주는 2007년 생산이 중단됐다. 생막걸리는 유효기간인 10일 안팎인데 유씨에게서 발견된 막걸리의 출고일자는 지난해로 나와 있다.
그러다보니 인터넷 상에서는 누가 변사체를 유씨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영화 ‘이끼’의 소름 돋는 결말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검경이 이런 의구심들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유병언 변사체를 둘러싼 논란은 민심을 더욱 흉흉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걱정이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