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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족구를 좋아한다. 족구는 구기 종목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유일한 경기다. 옛 문헌에 보면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부터 짚이나 마른 풀로 공을 만들어 중간에 벽을 쌓고 공을 차 넘기는 경기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족구의 역사는 1300년도 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내려오던 족구는 1960년대 공군 조종사들이 비상대기 업무를 수행하면서 간편히 조종복을 입은 채 할 수 있는 운동에 착안하여 배구장에서 배구네트를 땅에 닿도록 내려놓고 축구공이나 배구공으로 인원에 제한 없이 손만 사용하지 못하고 몸 어느 부위나 다 사용하여 배구와 같이 3번에 상대편으로 차 넘기는 규칙으로 경기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 빠르게 대중화되어 족구를 즐기는 사람이 7백만 명을 넘고 이제 세계 각국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족구를 잘하려면 3가지가 중요하다. 잘 받고, 잘 올리고, 잘 때리는 것이 핵심이고, 경기중에는 몸 자세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 기본이다.
족구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7.30 재보선 풍경이 마치 족구 경기를 보는 것과 흡사해서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는 야당이 질 수 없어 보이던 판이 막상 선거가 시작되고 나서는 야당이 이기기 어려운 판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족구 시합에 비유하면 야당은 자기 코트에 넘어온 민심이라는 공을 잘 받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국민을 무시한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 사태로 분노하는 민심을 몸 자세를 낮춰 잘 받고, 이를 선거의 쟁점과 주 전선으로 만들면 되는 선거였는데 이를 놓친 것이다.
반면 여당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지형과 전선을 바꾸지 않고는 패배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여당은 혁신 카드를 빼 들었다. 20대 청년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해 '혁신 프레임'을 전선으로 만드는 작업과 함께 용의주도하게 선거 쟁점을 세월호와 인사참사로부터 떼어놓는 데 주력했고 성공했다. 이른바 '프레임 전쟁'에서 여당의 전략이 승리한 것이다.
두 번째, 공이 둥글듯이 민심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분노한 민심을 높이 띄워 올리는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 공천 작업이라면 야당은 몸을 최대한 낮춰야 했다.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오만하기까지 한 정부 여당을 응징하고자 하는 민심을 공중 높이 띄워 올리기 위해 야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춰 공천 과정을 진행하면 되었다. 하지만 민심의 요구와 다르게 꼿꼿이 선 자세로 공을 받으니 공은 엉뚱한 데로 튀었다. 야당의 무능과 오만 논란이 정부 여당의 무능과 오만을 가리게 된 것이다.
세 번째로 야당은 튀어 오른 공을 잘 때려서 상대편 코트에 찔러 넣어야 할 텐데 이게 쉽지 않게 됐다. 공천 과정에서의 파행과 분란은 아무렇게나 거칠게 띄워 올린 공처럼 보인다. 잘못하면 공을 넘기려다 공이 네트에 걸려 자기편 코트에 떨어지고 말 가능성이 크다. 7.30 재보선 결과는 공을 정부 여당 코트에 차 넘겨 야당이 승리를 거머쥐느냐, 아니면 오히려 공이 야당 쪽에 떨어져 자멸하느냐를 판정하게 될 것이다.
쉽지 않아 보이지만 7.30에서 야당이 승리한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 것인가?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여당은 자중지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불과 1년 반 뒤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여당은 갈등과 마찰을 빚게 될 것이고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야당은 자연히 정국을 주도할 영향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 연장 선상에서 다음 총선에서 야당은 과반수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고, 성공하면 정권교체의 대문이 활짝 열리는 셈이다.
이처럼 막중한 결과를 초래할 7.30 재보선 승리를 위해 야당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직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다. 엊그제 주말 서울 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 나온 만 오천여 명의 시민들 눈에서는 모두 눈물이 흘렀다. "나는 살고 싶다. 나는 꿈이 많은데." 동영상에서 외치는 어린 학생의 절규를 듣고 울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눈물은 흐르지만 변한 것은 없다. 세월호 이전의 대한민국과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범국민적 요구였건만 달라진 것은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조사기구를 만들자는 유가족의 요구는 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있다. 야당은 특별법 통과를 주문처럼 외고 있으나 협상으로 통과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세월호는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사건이다. 이때 나라가 변하지 않는다면 또 어떤 계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야당은 국민과 결합해 국민의 힘으로 특별법을 쟁취해내야 한다. 국민은 강단 있는 야당을 보고싶어 한다. 7월 24일로 세월호 100일을 맞는다. 야당 지도부는 7.24 범국민대회에 전 당원 총집결령을 내리는 게 옳다. 15개 재보선 지역의 선거운동을 일시 중단시키고 모든 후보를 서울광장으로 불러들여 특별법 관철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는 게 옳다. 그 길이 야당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 동 영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