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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지아 항공 소속 여객기가 정체 불명의 미사일에 인해 피격되어 많은 희생이 생겼습니다. 아직 이것이 우크라이나 군의 것인지, 러시아 군의 것인지, 혹은 반군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황이나 국제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볼 때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성향의 반정부 게릴라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전문가들의 의견대로 고고도 지대공 미사일이 반군에 의해 발사된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부터 전혀 새로운 유형의 테러리즘에 직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형태도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전쟁이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었습니다. 알 카에다의 테러가 그 한 예가 될 것입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간 침공은 그 국가 정부를 상대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특정 인물을 압박하고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에 대응하는 테러 세력들이 이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장방식을 가지고 그들의 적대세력에 공포를 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구소련의 통제 하에 있었던 무기들 중 전술핵과 화학무기, 생물학 병기 등은 물론 전술 무기 중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것들이 탈취되고 이들이 테러집단에 암거래되고 있다는 데 대한 공포는 이미 9.11 테러 직후 군사 전문가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이번 사건은 그것을 반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탐 클랜시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썸 오브 올 피어스' 는 핵무기가 특정 집단에 흘러들어가 사용되고 이것이 핵 전면전을 부를 수 있는 양상으로 치닫는 과정을 끔찍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기획되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9.11이 터졌고, 사건 이후에 개봉된 영화는 그 바람에 더 사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전쟁의 양상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떤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 전쟁이 시작될지, 그리고 그것이 국가가 아닌 그다지 크지 않은 집단에 의해서도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속속 증명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불특정의 다수들이 너무나 억울하게 그들의 삶을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는 지금 전 세계가 이 사건을 누가 일으켰든간에 이를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전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태는 다시 더 거대한 소용돌이를 잉태할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남북한에서 이같은 새로운 전쟁과 테러및 도발 방식의 출현은 우리에게 보다 강력하면서도 효율적이고, 정보의 흐름을 명확히 읽을 수 있는 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보다 선제적이면서 국제정세를 명확하게 읽고 대처하는 군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라고만 명시돼 있는 상황도 사실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의 진짜 적은 최근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탈바꿈한 일본일 수도 있고, 겉으로는 친선과 화평을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빨대를 대 놓고 대한민국을 쪽쪽 빨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중국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전통적인 우방 개념으로만 보자면, 미국은 한-일간의 갈등에서 계속 일본의 손만을 들어주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것에 대응할 우리의 군사력은 자주적이고 독자적이며 말 그대로 '스마트' 해야 합니다. 어떤 돌발 변수가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전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고 있는 이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들에 대해서, 아직도 무조건 병사들을 누르고 굴리는 식의 군대 운용은 낡아도 한참 낡은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군의 진정한 현대화가 필요한 시점인데, 군이나 정보 기관이나 댓글이나 달고 앉았고, 경계는 뻥뻥 뚫리고, 사병들의 사기는 완전히 떨어지고, 군 수뇌부는 몸보신만 하려는 그런 군대가 현대의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국방을 잘 할 수 있으련지 걱정됩니다. 하긴, 자기 나라 군대의 지휘권도 없는 참으로 부끄러운 상황이기도 합니다만.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