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5곳에서 실시되는 사실상의 ‘미니총선’ 격인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아주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 모두 마치 이번 선거를 포기하도 한 듯 서로가 ‘자충수(自充手) 공천’을 실시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표적인 이명박 측근 나경원(左), 임태희(右) 실제 새누리당은 이른바 ‘MB맨 공천’이라는 악수(惡手)를 두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보은(報恩) 공천’ 논란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새누리당은 경기 수원정(丁)에 MB(이명박)의 핵심측근인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을 전략 공천했다. 또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지역인 서울 동작을(乙)에는 한나라당 대변인 출신의 대표적 친이(親李, 친이명박)계인 나경원 전 의원을 후보로 선정했다.
야당에게 ‘이명박 때리기’ 빌미를 제공하고 만 것이다.
실제 야당은 이들을 겨냥 ‘실패한 MB맨들’이라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허영일 부대변인은 15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4대강 대국민 사기극에 대해 책임 있는 증언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이 전 대통령과 4대강 대국민사기극의 공동정범인 비서실장 임태희 후보와 대변인 나경원 후보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앞서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도 전날 경기도 수원시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MB 비서실장, MB 대변인 등 ‘MB맨’들의 귀환은 우리 사회의 적폐를 떠올리게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으며, 같은 당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이들을 거론하며 “전 정권 국정파탄의 장본인들, 혹은 적극적 방조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정의당도 'MB 심판론'에 가세했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전날 당 의원총회에서 "이번 7.30 재보궐선거의 하이라이트는 삼성 엑스파일 공개로 정경유착을 폭로한 노회찬 후보와 BBK 이명박을 옹호하는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와의 대결"이라며 "4대강 파괴 이명박 비서실장 임태희 후보와 노무현 대변인 천호선 후보와의 대결"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이 이처럼 본격적으로 ‘MB때리기’에 나섬에 따라 현(現) 정권심판론이 아니라 전(前) 정권심판론이 이슈로 떠오르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여당 후보들에게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비록 세월호 사고와 인사파동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하락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야당이 박근혜정부를 적접 공격했다가는 되레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반면 MB의 임기말 국정지지도는 20%대에 불과할 만큼 인기가 없었다. 여당 지지자들도 그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따라서 야당이 ‘MB때리기’에 나선다고해도 역풍은커녕, 오히려 박수를 받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자충수 공천’이 지금 야당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보은공천으로 공격받는 권은희 그러면 새정치연합은 그런 ‘자충수 공천’이 없는가.
아니다. 있다. 새누리당의 ‘MB맨 공천’보다 더 잘못된 공천이 바로 광주 광산을(乙)에 권은희 후보를 내세운 이른바 ‘보은(報恩) 공천’이다.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권 후보는 ‘위증의 아이콘’이고 새정치연합의 전략 공천은 거짓말 대가 공천이 돼버린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로 인해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뚝 떨어지고 말았다.
한국갤럽이 지난 8~10일 사흘간 전국 성인 101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권에서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63%에서 53%로 10%포인트나 하락했으며, 전통적으로 야당의 강세 지역이던 서울에서도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35%에서 30%로 하락했다.
또한 중립지대로 꼽히는 충청권에서도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37%에서 30%로 폭락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국정원 댓글’사건에서 수사과정에 외압이 있었음을 폭로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권 후보가 새정치연합의 공천을 수락한 7월 9일을 전후로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초 권은희 후보를 공천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번 재보선은 야당이 ‘싹슬이’ 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판세가 급격히 변하면서 이제는 여야가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새정치연합의 ‘자충수 공천’이 결과적으로 승리가 보장된 선거를 망쳐 놓은 셈이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