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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전당대회에서 김무성이 당권을 장악함으로서 친박계의 몰락의 서곡이 시작됐습니다.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집권 17개월만에 친박은 말 그대로 몰락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 새누리당의 친박이라는 세력이 세월호, 그리고 소통의 불통 같은 온갖 악재들로 인해 그나마 대통령에게 의지하고 있던 이른바 당심이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2년 후 총선에도 이른바 새누리당의 '비주류'들이 공천권을 장악함으로서 실질적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것은 박근혜 본인이 불러 온 참사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에 보여줬던 온갖 무능, 그리고 소통의 부재는 같은 당 안에서조차 박근혜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킨 원인일 것입니다. 지방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박근혜에 기대려는 정서는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방 선거 이후에 보여준 그 세력의 무책임함, 그리고 소통이 없는 독불장군 식의 국정운영은 결국 박근혜 자신의 지지기반 자체를 깎아 먹는 바탕이 된 것입니다.
최소한의 소통 의지조차 없다는 것이 아마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반발 심리의 가장 깊은 핵심이었을 터입니다. 그리고 실기, 즉 때를 놓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극적인 사례가 됐다고 할 것입니다. 이른바 문창극 사태에서 보여진 박근혜 정부의 모습은 국민 대중에게는 친일파들의 실체를 대하는 것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그 이후 문창극의 자진사퇴 국면에서는 박근혜를 지지했던 일베 등을 비롯한 이른바 '극우 세력'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킴으로서 자신의 지지 세력을 동시에 말아먹는 진풍경을 연출했고, 그 이전에 세월호 참사 해결 국면 과정에서는 과거 새누리당의 지지 세력이었던 중산층 보수들조차 등을 돌리게 만들었으며, 이제 비주류가 당권을 잡음으로서 박근혜 정부는 더욱 고립된 국면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철저한 인식의 부재와 소통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또 시대를 잘못 인식하고 파악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21세기의 민주주의의 정신, 민주주의의 맛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시민들은, 비록 보수 측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도 지금의 정부가 얼마나 무능하고 무조건 손 들어 줄 수 없는지를 일부 골수 박근혜 지지층,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정희 향수가 골수까지 배어 있는 층을 빼고는 다들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원래부터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던 절반의 국민들은 당연히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실제로 지금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거품일 뿐이란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로서 그나마 박근혜가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들을 다 놓쳤다는 것입니다. 정권 초기부터 박근혜를 제대로 살리고 띄울 수 있는 카드는 이명박에 대한 청산이었습니다. 지금 무엇인가 건드리면 안되는 뒷거래가 존재했었다고 해도, 오로지 박근혜에게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는 카드는 이명박에 대한 단죄밖엔 없었는데, 그나마 이젠 쓸 수 없게 된 것이 박근혜에겐 더욱 큰 실기로 각인될 겁니다.
이미 이명박의 죄과들은 매년 여름이면 나타나는 끔찍한 자연 재앙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 전엔 이름도 듣도보도 못한 '큰빗이끼벌레'라는 말이 검색어의 최상단을 차지한 것은 물론입니다. 녹조라떼라는 말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결국 이명박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을 찾아 규명하고 바로잡으려 했다면, 이명박 실정에 대한 청산과 처벌은 필수였습니다. 그러나 당권마저도 비주류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은 이명박 시대가 박근혜 시대를 아직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당연히 레임덕의 밑바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런 무능한 정권을 그래도 떠받쳐 주는 세력이 있습니다. 종북타령을 하며 오래된 이념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분단 고착을 통한 영구 집권을 꿈꿨던 세력들이 그 하나일 것이며, 역시 개인의 욕망으로 똘똘 뭉쳐 있는 정치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하고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참 좌절스럽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박근혜 정권을 아직도 '떠받치고' 있는 세력들 중엔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를 위시한 '무능한 야당' 이 있다는 겁니다. 국민의 열망을 떠안지 못하고 있는 저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야당이 그나마 숨 넘어가기 직전인 박근혜 정권을 받쳐주고 있다는 이 사실. 참 아이러니컬합니다. 만일 이번 보선에서 야당이 진다면, 그들은 정말로 당을 떠나야 합니다. 아니, 정계를 떠나던지, 아니면 새누리당으로 입당하든지.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