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광주 광산을 재보선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국정원의 대선불법개입을 수사하던 중 경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음을 폭로했던 이 당찬 여인의 정치입문 소식은 필자를 잠시 혼란스럽게 만든다. 의당 그녀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갔다며 가슴은 요동치고 있는데 그 시기와 번지수에 있어선 머리는 연신 갸우뚱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의가 자신의 세상인양 득세하는 시대에 정의의 상징이며 살아있는 양심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 여인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오늘은 그 명과 암에 대해서 살펴볼까 한다.
1. 明(명)
지난해 여름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경찰 수뇌부의 외압여부를 추궁하는 의원들의 질문에 모두가 기계처럼 '아니요'를 연발하고 있을 때 홀로 '예'를 외친 권은희 과장의 기개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장판교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수십만의 조조군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장비의 기개와 기상이 그날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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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과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광주의 딸'을 운운하고, '종북세력'을 거론하던 새누리당 의원들도 그녀의 정연한 논리와 의연함에 맥없이 고꾸라질 뿐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영혼없이 기계적 멘트를 남발하던 나머지 14명의 증인들이 '경찰1, 경찰2...경찰14'의 이름없는 엑스트라로 전락한 그 시각, 누가 뭐라고 해도 무대의 주인공은 단연 권은희 과장이었다. 청문회 이후 그녀가 정의와 양심의 상징으로 불리우며 주목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난세에는 반드시 영웅이 필요하다.
불의가 판을 치는 시대, 개인의 양심이 추락하는 시대, 보편적 상식이 무너진 시대, 반칙이 횡횡하고 원칙과 기준이 구박받는 시대라고 해서 정의와 양심, 보편적 상식과 원칙에 대한 갈급함마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소중한 가치들이 거세당한 난세일수록 그것들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절실해진다. 사람들은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보고 싶어 했고, 코를 진동하는 더러운 시궁창 속에서 아련한 꽃내음을 맡고 싶어했다. 그날 사람들은 권은희 과장을 통해서 빛과 향기 그 모두를 보았다.
대한민국에서 이제 권은희 과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국적인 인지도는 여타의 기성 정치인 조차 감히 명암을 내지 못할 지경이다. 그녀의 영웅적 기개와 기상을 기억하고 있는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것이고, 어떠한 외압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변치않던 올곧은 신념은 그녀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노무현 이후 가장 당당하고 대차며 원칙과 소신으로 똘똘 뭉친 신뢰의 정치인을, 그것도 대중성까지 겸비한 정치인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2. 暗(암)
서두에 밝힌대로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갔다. 호랑이가 있어야 할 곳은 좁디 좁은 창살 안이 아니라 광활한 숲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누벼야 할 광활한 숲이 지금 만신창이다. 숲은 파괴되고 곳곳에 덫만 즐비하다. 필자가 우려하는 몇 가지를 열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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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을은 원래 천정배 전 의원이 공천신청을 한 곳이었다.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천정배 전 의원만한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곳에 권은희 과장이 전략공천되었다. 권은희 과장의 광주 광산을 전략공천은 김한길•안철수 대표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이 두 사람은 민주당의 중진들인 정동영 전 의원과 천정배 전 의원을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며 이번 재보선 출마를 막고 있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결국 권은희 과장의 전략공천과 천정배 전 의원의 사퇴 및 불출마 선언에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내 헤게모니 싸움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국민적 인지도가 높은 권은희 카드를 꺼내듬으로써 두 사람은 바람빠진 당내에 신선한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향후 자신들의 입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쟁쟁한 당내의 실력자들을 사전에 제거하는 양수겸장의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술수에 권은희 과장이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자칫 대의에 쓰여져야 할 칼이 당리당략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저어되는 이유다.
권은희 과장이 출마하게 될 재보선 지역도 생각해 봐야 한다. 광주 광산을은 새정연의 심장이자 텃밭과도 같은 곳이다. 광주 출신의 권은희 과장에게는 무척 낯익고 반가운 곳이기는 하나 '권은희'라는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과 파괴력에 미루어 본다면 아무래도 참신성이 떨어진다. (김한길•안철수 다운)너무나도 안전한 선택으로 그 감흥이 현저히 반감되는 한편, 있는지 없는지 도무지 존재감이라고는 없는 새정연의 현 상태가 고스란히 반영된 듯 밍밍하기 그지없다. 적어도 '권은희'라는 최강의 패를 꺼냈다면 새누리당의 아성인 서울 동작을 정도는 되어야 했다. 이는 소 잡는데 쓰여야 할 칼이 닭 잡는데 쓰이는 격이다.
권은희 과장의 출마는 한편으로 지난 대선에 불법 개입한 국정원 사건을 자연스레 다시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하는, 새정연과 권은희 과장 자신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국정원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준 빛나는 모습들은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물어 뜯겨져 나갈 것이고, 새정연 역시 '대선불복 프레임'의 올무에 사로잡혀 또 다시 (한심하기 그지없게도) 산 입에 거미줄을 쳐야할 지도 모른다.
또한 권은희 과장이 원내진입에 성공하면 새정연 내의 계파 갈등에 휩씨여 예의 기개와 결기를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도 있다. 권은희 과장이 보면서 '희망을 느꼈다'던 안철수 새정연 공동대표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필자 역시 한때 '안철수'를 통해서 새정치에 대한 희망과 미래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기성 정치인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다. 광주 광산을 전략공천에 안철수 대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안철수 대표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은, 정치인 권은희의 향후 행보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작은 표식일 지도 모른다.
3. 결론
그러나 이와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권은희 과장이 국회에 진출하게 되면 그녀를 공천한 새정연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정치판에도 한바탕 회오리가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정치 불신과 정치 혐오를 부추겨온 저급한 몰상식적 행태들과 '권은희'로 상징되는 보편적 상식과의 한판 대결이 볼만하게 펼쳐질 것이다. 특히 지난 청문회에서 그녀에게 '광주의 딸',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는 무지몽매한 망언들을 마구 배설하던 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 보게될 장면은 생각만해도
'유쾌, 상쾌, 통쾌'하기만 하다.
필자는 권은희 과장이 사직서를 제출하기 불과 몇 일전 그녀 앞으로 한 편의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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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과장님 잘 지내시지요?'로 시작되는 그 편지를 그녀가 읽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사직을 결심하고 있었을) 그녀에게 보내는 작은 헌사였는 지도 모르겠다. 그 글의 말미에 필자는 이렇게 적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고.
필자는 권은희 과장이 이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을 정치판으로 불러낸 주체가 새정연의 누가 아닌 먼 발치에서 당신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이름 모를 민초들이라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럴수만 있다면 필자의 우려는 한낯 기우로 판가름날 것이고 '권은희'는
'광주의 딸'이 아닌
'국민의 딸' 나아가
'국민의 정치인'이 될 것이다. 권은희 과장의 정치 행보에 건승을 기원한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