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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축재의 수단 즉 수익모델로 사용했던 엠비 도적정권을 유신대왕의 공주가 뒤를 이어 기상천외한 사건이 난무하고 도적놈들의 전성시대가 계속 상연되고 있다.
부패 공무원과의 유착으로 소정의 규정을 무시하고 운항하던 세월호가 좌초되었다가 온 국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가운데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의 고등학생을 포함한 300명 넘는 귀중한 생명을 수장시키더니 후속으로 취해진 조치는 한 마디로 말해서 팔자소관으로 알라고 강제한다.
와중에 뿌리가 친일파인 총리후보란 인간의 입을 빌린다면 세월호 사건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리는 시련이라고 말한다. 책임선 상에 있는 관리들은 뻔뻔한 얼굴로 이왕 죽어 버린 것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이냐고 국민을 향해서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호통치고 있다.
국민의 여론에 밀려 두 명이나 되는 총리후보가 연속으로 중도에 사퇴하자 세월호의 책임을 지겠다고 사임했던 총리가 이제 보니 그만한 인물도 찾지 못하겠다고 진짜 뻔뻔하게 주저 않아 총리직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모두가 경상도 장기집권의 폐단에서 나온 어처구니 없는 절대봉건시대 그것도 왕조 말기에나 나타나는 말세현상들이다.
그리고 기라성 같은 장관후보들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중이다. 이병기란 국정원장 후보자는 북한괴뢰군에게 돈을 줄테니 남한 국민들을 향해 총을 쏴달라고 부탁했던 소위 총풍사건의 주모자에 부정선거자금을 가득채운 봉고차 받았던 차떼기 선거자금 모금자고, 교육부장관 후보라는 자는 제자들의 논문을 돈벌이에 이용한 소위 학자 타이틀 출신이고 검사라는 우월적 신분을 이용해 술자리에서 기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가격하여 해당기자를 중상에 입힌 조폭형 검사출신에 자기와 같은 고귀한 신분의 검사나리는 100표의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는 완전 2천년 전에 이미 사라진 봉건왕조 시대의 사상을 보유한 자가 안행부장관 후보고 그 밖에 탈세 병역미필, 부동산투기 등의 항목은 오히려 장관이 되는 필수적인 자격요건이라도 되는 듯, 하나 같이 부패하고 파시스트적인 성향이 농후한 인물들의 경연장이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그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다고 총리에 장관 후보에 오른 자들이다. 평판이 좋은 자들의 그 정도니 지금도 호시탐탐 총리나 장관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일반 관료들의 행태는 안 봐도 뻔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장기집권으로 경상도 출신 인물이 고갈되어 남은 인사들이라고는 모조리 도적놈에 친일파에 파시스트 성향의 인사들뿐이라면 그 대척점에 있는 야당이라도 역할을 제대로 해서 정권교체를 이루어 새로운 기풍을 일으켜야 하나 그것도 역시 경상도 2진들에게 점령당해 실제적으로 연정상태에 있으니 참으로 나라가 한심하다 못해 망쪼가 들 것 같다. 하기야 남한 국민의 눈높이가 분수도 모르게 너무 높으니 북한의 수준에 맞추어 남북한 공히 거지가 되어 오순도순 사는 것도 그다지 절망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래도 한수원 도적들이 원자력발전소 부품을 가짜와 불량품으로 납품한 사건이 유야무야시키고 또 그 위험한 원전을 여전히 가동시키고 있으니 조만간에 이 한반도에 후꾸시마원전 사건이 재현될까 걱정되기도 하고, 과거 2천 년 이상 패권국으로 군림했던 중국이 서세동점의 아픈 상처를 딛고 욱일승천의 기세로 비상하기 시작한 반면 그 대척점에 20세기 이후 국제경찰 역할을 자임해 온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으로 생긴 갈등 사이에 낀 한국의 모습이 마치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끼어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절단 난 때의 정세나 구한말 부정부패 관료들이 동학민중운동을 외세의 힘을 빌려 진압하더니 결국은 나라를 통째로 들어 일본에 넘긴 구한말의 사태와 같이 머지않아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은 미중의 갈등 속에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제2의 한국전쟁을 발발시켜 나라가 절단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같은 군대라도 이순신 밑에서는 천하무적이 되고 원균 밑에서는 오합지졸이 된 사례에서 보듯이 군대의 강하고 약함은 사병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지휘관들의 유무능에 달려 있는 이치와 같이 국가의 흥망은 해이된 국민의 기강 때문이 아니라 관료들의 부정부패 때문이며 그들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며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적국의 간첩노릇도 하고 또 나라를 통째로 들어 넘기기도 한다. 물론 적국으로부터 그 댓가를 받아 나라는 식민지가 되어도 그들은 호의호식은 그대로 계속 누릴 수 있음은 물론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전국시대 부패관료들의 행태를 적시하여 정치지도자들에게 경계를 주는 사례다. 첫 번째 사례는 지금으로부터 약 2400여 년 전 전국시대 초기 위문후라는 영명한 군주의 출현으로 일약 패권국이 되어 중국천하를 호령했던 위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위대한 지도자 밑에는 현신들과 명장들이 모이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진리다. 당시 위문후 밑에는 중국역사에 빛나는 기라상 같은 명신과 명장들이 즐비했다. 대표적인 인사들은 무장으로써는 중산국을 멸하여 위나라 땅으로 만든 악양(樂陽), 손자병법과 쌍벽을 이루는 오자병법의 창시자 오기(吳起), 인류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개혁을 이루어낸 상앙의 스승 격에 해당하는 법가 이극(李克), 그리고 지금의 하북성 남단의 남장현 일대를 관할했던 업성(鄴城)의 태수로 하백이라는 물귀신에 현혹되어 폐허가 된 지역을 기지를 발휘하여 혹세무민한 무당을 하백에게 심부름 보내 물에 빠뜨려 죽이고 그 땅에 대규모 관개시설을 건설하여 그 땅에 치세를 이룩한 서문표(西門豹)가 있었다. 업성은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삼국지의 내용 중 원소가 도읍했던 곳이고 후에 조조가 원소를 격파하고 차지하여 다시 새로 세운 유명한 동작대를 건설한 곳이다.
서문표가 업성을 다스리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위문후에게 관할지역의 민정을 보고하기 위해 위나라의 도성 안읍을 방문하여 위문후를 배알했다. 그러자 위문후는 다짜고짜로 서문표를 향해 직무를 태만히 하여 업 땅을 황폐시켰냐고 힐난했다. 서문표는 마음 속으로 사태를 짐작하고 그 즉시 위문후에게 사죄하고 자기에게 1년 동안만 말미를 주면 군주의 마음을 만족시켜 드리겠다고 청했다. 이윽고 약속한 1년이 지나 서문표가 그 동안의 실적을 보고하기 위해 안읍에 들어와 위문후를 알현했다. 과연 위문후는 어떤 방법으로 처음에는 업 땅을 잘 다스리지 못하다가 1년 동안에 그렇게 좋은 실적을 올리게 되었는지 물었다. 서문표가 대답했다.
“ 처음에 주군의 명을 받고 업 땅에 부임하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온힘으 쏟느라고 군주님의 측근들에게 인사를 소흘히 했습니다. 과연 군주님의 측근들은 자기들에게 소흘한 저에 대해 참소와 모함을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군후님은 그들의 말만 믿고 저를 보시마자 견책하셨습니다. 그래서 군주님으로부터 1년의 말미를 얻은 신은 업 땅으로 돌아가 백성들로부터 가렴주구를 행하여 걷은 돈으로 군주님의 측근들에게 뇌물로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군주님의 측근들은 신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
위문후가 서문표에게 사죄하고 업 땅의 태수 직을 계속 맡으라고 명했으나 서문표는 태수자리를 버리고 은거했다.
그리고 50여 년 후에 제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그 때 제나라의 왕은 위왕(威王)이었다. 제왕의 자리에 오른 위왕은 일부러 정사를 신하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희첩을 옆에 끼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비밀리에 지방 관아에 보내 민정을 시찰하게 한 심복들이 보고한 내용과 측근들의 보고를 비교하고 있었다. 이윽고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한 제위왕은 신하들에게 묻곤 했다.
「읍을 지키는 수령 중에 누가 가장 어질고, 누가 가장 불초한가?」
조당에 있던 관리들은 모두 아읍(阿邑)대부가 어질다고 극구 칭찬하고 즉묵(卽墨)대부를 폄하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위왕은 교지를 내려 두 대부를 소환했다. 즉묵대부가 먼저 조당에 당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