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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1990년대 군사정권 때 두차례 다녀갔고 프란치스코 로마교황의 세 번째 방한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번 교황 방한은 가톨릭청년회 행사와 순교자 시복을 위한 종교행사라 하지만 국가의 심장부인 광화문에서 초청신도 20만명이 운집하는 대규모 거국행사를 여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교황의 방한을 추진했다고 하나 정교분리의 민주국가에서 가톨릭이 주체가 되지 않고 정권이 나서서 적극 추진 초청한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국가기관에 의한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 정권을 교황이 다녀감으로써 면죄부를 주고 정통성을 획득하기 위함이 아니냐고 한다. 그렇다면 순수한 종교행사가 아니라 정치적 흥정이고 거래인 셈이다. 교황 방한으로 가톨릭은 교세가 확장되고 신도가 증가하며 국가적 영향도 막대하게 된다.
빅근혜 정부가 집권 이후 1년6개월 동안 이렇다할 업적도 없는데다 국민들이 떼죽음 당하는 대형사고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국정을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들을 밀실에서 내정하는 등 무책임한 인사정책과 무능한 정책이 이어지다 보니 집권여당 인사조차 조기 레임덕을 입에 담는 지경이 되었다.
과거 정권처럼 대통령 탄핵, 정권 퇴진이 나올 정도로 불신이 가중되고 있는데 며칠 전 방한한 시진핑 주석의 한․미․일 동맹관계를 느슨한 관계로 만들어 틈을 벌어지게 한 효과에 더하여 교황 방한으로 정권의 정통성과 지지율 상승이 따르게 된다. 속된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격이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1년 내내 박근혜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전국적으로 시국미사와 시위를 앞장서서 벌이던 한국 가톨릭이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뚝 그쳤으니 말이다. 수개월간 세월호 여론이 들끓어도 묵묵부답이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인 비리인 4대강에 괴생물체가 급속도로 번식하고 생명의 강이 썩어가고 있는데도 오불관언이다.
혹시라도 기우이기를 빌지만 보수적 교구청이 침목하는 건 이해되지만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 정의구현 사제단 마저 아무 말이 없는 것은 정치적 타협인가 압력인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가톨릭의 기나긴 역사를 보면 해답이 나온다. 1천년 동안 제국주의 종교로 절대권력을 행사했고 중세기부터 근대까지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타민족을 학살하며 인류사에 기록된 전쟁에 가톨릭이 늘 앞장섰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황은 종교지도자로 포장된 로마제국주의시대의 황제인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말이 아니라 카톨릭과 대립관계인 유대개신 정교회 이슬람 등의 많은 자료에서 발견된다.
달라이라마의 방한이 중요한 까닭
세계적인 정치적 종교권력의 수장인 교황과 달리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망명정부지도자로 또는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세계 최고의 정신자도자로서 세계사에 길이 남을 분이다.
교황이 바뀔 때마다 늘 보수진보로 나눠 일희일비하는 정치적 성향의 교황과 근본적으로 다른 달라이라마는 세계인의 가장 존경하는 인품과 법력 영도력을 갖춘 분으로 살아 있는 부처, 살아있는 예수라 할만하다.
성하는 세계평화의 아이콘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전 세계 자유국가를 수없이 방문해서 인간의 자각과 전쟁과 파괴, 분열과 대립의 해소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분이다. 더구나 그분은 사랑하는 조국, 티베트를 중국에 강제로 빼앗기고도 북인도에 망명 정부를 세워 증오와 보복이 아닌 예지와 자비정신으로 세계와 중국 정부를 향해 평화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설파하고 몸소 실천하고 있어 감동적이다.
티베트는 사실상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나당연합으로 고구려 백제를 물리친 당나라는 남아 있는 신라마저 삼키려 했으나 신라는 8년 동안 당나라에 항쟁을 벌였고 끝내 물리쳤다. 신라의 호국 의지와 때마침 토번(티베트)이 당나라 수도 장안을 점령해서 절대절명의 위기에 한반도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시대 거란 여진 몽고 등의 항전 1백년 동안 티베트 불교문화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 성하가 언급한 신라의 무상선사가 티베트에 밀교를 전도한 인연, 근대에는 다수 국민이 모르고 있는, 6.25 전쟁직전 티베트를 무력 침공한 중국이 그 이듬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세계의 모든 이목이 한반도로 집중한 틈을 타서 오랜 숙원인 방대한 티베트를 조용히 삼킨 것, 이 또한 우리에게는 큰 빚으로 남아 있다. (김한규 서강대 교수 - 티베트와 중국, 참조)
막강한 조직과 교세, 인물을 자랑하는 한국 가톨릭도 한국 불교에 빚이 많다. 가톨릭의 시발지라는 천진암은 1779년 여주 주어사와 함께 불교승려와 사찰이 가톨릭 신자를 보호해 주다가 수난을 당한 역사의 빚이다. 몇몇 개혁 소장파 승려들에 의해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위가 결성되었다. 2천년부터 시작된 달라이라마 초청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표면적인 이유로 중국의 반발과 경제압력이라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웃 일본은 수십 차례, 한국보다 더 압력을 받고 있는 대만도 세 차례나 성하의 초청이 이루어졌다. 진보정권이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마저 성하의 초청을 약속했으나 수많은 측근인 신구기독교 세력의 드러나지 않는 반대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남북분단 상황과 남북 모두 외세영향권의 현실에서 외세종교가 득세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호국안민의 한국불교가 미약하지만 그들을 설득하고 정부와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국제 여론도 일으켜야 가능하다. 연세가 고령인 성하의 방한은 교황보다 훨씬 의미심장하고 남북평화를 위해 절실한 일로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다시 한번 달라이라마 성하의 방한을 촉구한다.
<윤소암 : 시인, 한국불교역사문제 연구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