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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사극 ‘정도전’이 지난 6월 29일 50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정도전이 대체로 호평과 함께 화제를 불러모았던 이유는 작품 자체에 어떤 인기비결이 있었다기 보다는, 대체로 재미나 시청률을 위해 퓨전사극이나 역사비틀기 또는 사극이라기 보다는 시트콤이라고 봐야할 정도로 지나치게 경박한 분위기의 사극등이 판을 치던 근래의 세태속에서, 모처럼만에 기존 역사에 충실하면서 품격있고 무게감있는 사극을 만났다는 점에서 기존 사극팬들의 이 부분에 대한 결핍을 모처럼만에 충족시켜주었다는데서 이유를 찾을수 있을것 같다.
한편 보도에 의하면 KBS는 ‘정도전’에 이어 내년 1월경 부터는 후속 대하사극으로 ‘징비록’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징비록’이란 바로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 대감이 이때의 일들을 기록한 책임을 생각해본다면, 그와 동명(同名)의 사극을 준비중이라는 것은 결국 임진왜란 시기를 다룬 대하사극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다. 한편 ‘징비록’이 방영될 내년 1월까지 약 6개월동안은 이 시간대에 주로 다큐프로등이 연속으로 편성될 전망이다.
헌데 필자는 이 시점에서 대하사극과 관련 한가지 아쉬움을 좀 논하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역사속에서 주로 외적과 맞서 싸운 영웅으로 배워 알고있는 인물들을 꼽는다면 뭐니뭐니해도 조선시대엔 임진왜란때의 명장 이순신 장군이 있고, 고려에는 거란에 맞선 서희,강감찬 장군등이 있다. 한편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김유신, 백제에 계백, 고구려는 을지문덕 이런식으로 각 시대를 대표할만한 영웅격의 명장들이 각 왕조별로 한명씩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속의 영웅들이 사극으로 다루어진 사례를 살펴보면 이순신의 경우 2천년대 중반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이 있었고, 역사왜곡 논란이 있어 미흡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을지언정 서희와 강감찬 역시 ‘천추태후’에서 다루었었다. 삼국시대 명장들중에는 ‘김유신’은 주로 삼국통일 시기를 다룬 사극에서 여러차례 다루었었고, ‘계백’은 2011년에 MBC가 제작,방영한 바 있다. 이런식으로 따지고보면 우연치고는 공교롭게도 살수대첩의 영웅인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만 아직까지 사극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바가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뜨거운 화제가 되었던 2천년대 중반무렵. 지상파 3사가 앞다투어 고구려를 소재로 한 사극을 기획,제작한바가 있었다. MBC의 ‘주몽’, SBS의 ‘연개소문’ 그리고 KBS의 ‘대조영’이 바로 이때 제작된 사극들이다. 물론 고구려 드라마를 만든다고 해서 중국의 동북공정 시도가 수그러드는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고구려가 당당한 우리의 역사임을 대중들에게 당당하게 각인시키고 천명하는 의미는 분명 있다. 따라시 이 시점에서 살수대첩의 영웅인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을 한번쯤 대하사극으로 만들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자 한다.
사실 을지문덕은 2천년대 중반 SBS에서 제작한 ‘연개소문’에서 극 초반부에 잠깐 조연급 정도의 비중으로만 다룬 아쉬움도 있다. 무엇보다 ‘연개소문’은 그의 전횡과 아들대의 분란이 오히려 고구려 멸망을 앞당겼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는 인물이라 무조건 영웅시하는것은 좀 난감한 측면이 있는 인물인 반면, ‘을지문덕’은 김부식조차 삼국사기에서 ‘군자(君子)’라고 칭했을 정도로 무엇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인물이다.
외국과의 관계에서 물론 대결과 전쟁으로만 일관하는것은 현명한 처사는 아니다. 때로는 교류하고 때로는 협력이나 동맹을 맺기도 하면서 그러나 우리의 요구사항이 있거나 상대의 부당한 침탈이 있을 경우 당당히 주장하거나 맞서기도 하는 소위 ‘밀당’이 필요한것이 국제관계임은 물론이다. 사실 고구려의 경우 바로 중국과 맞닿아 있는 나라란 점에서 끊임없이 중국의 왕조들과 갈등해온 점. 무조건 미화하기엔 난감한 측면도 없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의 경우 5백년 내내 명나라와 청나라에 사대,굴종했으며, 신라는 삼국통일을 했다지만 만주땅을 잃어버리고 우리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쪼그라들게 했다는 면에서 분명 유감스러운 부분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고구려는 언제나 중국의 침략에 당당히 맞서 격퇴하곤 했더는 점에서 그 진취적인 기상만큼은 분명히 곱씹어볼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수 양제의 무려 113만이란 전대미문의 대군을 거느린 침략에 ‘살수대첩’이란 천하묘책으로 격퇴한 역사속의 명장 을지문덕. 사극소재로 이보다 더 매력적인 영웅도 없다.
근래들어 어떤이들은 이른바 ‘신라정통론’을 내세우며 고구려나 발해는 우리 민족과 상관없는 역사이니 우리 역사에서 빼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유감스러우며 위험한 주장일 따름이다. 고구려가 우리 역사가 아니라면 김부식은 무엇 때문에 ‘삼국사기’를 지었으며 거기에 고구려를 우리의 역사로 당당히 기술했겠는가. 을지문덕,온달,연개소문,을파소,명림답부,창조리 등등...그 무수한 장수며 재상들이 우리민족이 아니라면 왜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되어 있겠는가. 이른바 ‘신라정통론’ 운운하며 고구려 역사를 우리 역사에서 빼야한다는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용하기 힘든 주장이다.
오히려 요즘처럼 국제관계가 여러 가지로 복잡미묘하게 돌아가는 이 시점에서 수나라의 113만 대군에 당당히 맞선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의 진취적인 기상은 특히 자라나는 젊은세대들이 한번쯤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을지문덕’ 대하사극의 당위성을 다시한번 역설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을지문덕’은 그 역사적 의미로나 비중으로 보나 한번쯤은 우리의 사극에서 정면으로 다룰 필요가 분명히 있는 인물이다. 이순신,서희,강감찬,김유신,계백등등...역사속의 외적에 맞서 싸운 명장이나 각 왕조의 영웅격의 장수들을 우린 그동안 사극에서 한번씩은 다 다루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면으로 다루지 못한 인물이 있다면 그가 바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다.
이제 확실히 ‘을지문덕’을 한번쯤 공영방송의 대하사극으로 제작할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