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로 해양경찰청 기관보고가 열린 어제(2일)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의 '녹취록 왜곡'을 문제삼고 국정조사 보이콧을 선언했다. 새누리당 국조특위 위원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날 오전 김 의원이 청와대와 해경간 녹취록을 왜곡해 박근혜 대통령을 모욕했다"며 "김 의원이 특위 위원직을 사퇴할 때까지 기관보고를 진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관보고가 시작된지 불과 사흘 만이다. 비록 새누리당이 회의를 재개해달라는 세월호 유족들의 분노섞인 항의와 이를 질타하는 여론을 의식해 이날 오후 7시30분 국정조사를 다시 속개하기로 했지만, 새누리당발 국조파행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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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시작해서 다음달 30일까지 90일 동안 진행되는
'세월호 국정조사'는 그동안 기관보고 일정, 증인채택 여부 등에서 여야가 첨예한 이견을 보이며 난항을 겪어 왔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곧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국정조사'의 본질적 특성과 무관치 않다. 즉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제대로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박근혜 정부의 실책이 고스란히 수면 위로 드러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으로서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새누리당의 입장은 국정조사특위의 합의 과정과 이후의 국정조사일정 및 증인채택 여부 등에서 보여준 저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몽니'의 근본적 이유를 설명해 준다.
새누리당의 국조파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와 아주 유사한 사례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2013년 6월 24일 시작된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도 새누리당은 45일간의 국정조사기간을 파국과 파행으로 점철시킨 바 있다. 당연히 국정조사는 아무런 실효도 거두지 못한 채 너덜너덜한 누더기로 끝이 났다. 새누리당은 당시 민주당의 김현·진선미 의원의 특위위원 제척을 문제삼고 2주 가량 국정조사 특위를 파행시켰다. 두 의원에 대한 제척이 없는 한 어떠한 만남도 갖지 않겠다며 특위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를 시작으로 야당의 문제제기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정회 및 퇴장을 반복하며 국정조사의 목적과 취지를 무력화시키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그들은 더워서 국정조사를 할 수 없다는 괴상망측한 이유로 일주일 동안이나 이를 유예시키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애시당초 새누리당에게는 국정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이번 세월호 국정조사의 파행도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은 지난 5월 21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그러나 조사대상과 범위에 대한 이견으로 파행을 거듭하는 등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여야간 합의를 이룬 이후에도 표면적으로는 다방면에 걸친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사고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확실히 규명하고,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6·4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적 제스쳐에 불과했다. 언급한 대로 이번 국정조사는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면 질수록 정부여당에 정치적 부담만 가중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광진 의원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의 유족들은 물론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기관보고를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지난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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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문제가 된 녹취록에서 확인된 것처럼 청와대는 사고 당시 구조자체 보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한 현장영상확보가 더 중요한 듯한 행동을 보였다. 김광진 의원이 문제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사고 당일 오전 9시 39분 청와대 국가안보실 상황반장은 해경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구조상황과 관련해 몇가지 확인을 한 뒤 이어서 "현지 영상이 있느냐"고 묻는다. 해경이 잠시 머뭇거리자 그는
"지금 VIP 보고 때문에 그러는데, 영상으로 받은 거 핸드폰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고 한다. 30분 뒤 그는 다시
"사진 한장이라도 빨리 보내달라"고 해경 상황실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다시 6분 뒤
"(현장) 영상 갖고 있는 해경 도착했느냐. (전화) 끊지 말고 (도착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 보라"고 지시한다. 오전 10시 32분에도 그는 영상송출이 늦어지는 것을 두고
"아, 그거 좀 쏴 가지고 보고 좀 하라니까, 그거 좀"이라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승객들의 안전보다 현지영상확보에 집착하는 비상식적인 반응을 보인다. 마지 못해 해경 근무자가
"알겠다"고 하자, 그는
"VIP(가 요구하는 것)도 그건데요, 지금"이라며 대통령이 현지영상을 빨리 보고싶어 한다고 해경을 압박했다.
대통령이 현지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분 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위기상황 관리보다 영상확보에 우선순위를 두는 모습에서는 분노를 넘어 허탈감만 불러 일으킨다. 이 정부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였다. 국가재난상황 속에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가동되어야 할 위기관리시스템은 아예 없었고, 오직 대통령의 심기와 눈치만 살피는
'위기관리'만 난무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저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바로 이 부분을 밝혀내기 위한 시간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 발생 직후 제주 및 진도 관제센터, 지방자치단체,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안전행정부, 국방부, 국정원, 국무총리실, 청와대 등의 초기상황 대응 및 보고의 적절성 여부, 초기대응 실패의 원인 규명과 재난시스템 점검 등을 위해 마련된 시간인 것이다. 국정조사에 합의한 새누리당이 이같은 사실을 모를리 없다. 그러나 새누리당에게는 국정조사의 본래 취지와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청와대에 있었던 것처럼.
정부와 집권여당은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하며 공생하는 정치적 결사체다. 필자는 정부의 책임과 무능을 성토하는 마당이 될 이번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월드컵 기간을 피해 이루어진 기관보고일정, 7•30 재보선 뒤에야 실시되는 청문회 등도 사실 새누리당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김광진 의원의 발언을 문제삼으며 특위 보이콧을 선언했던 이번 헤프닝은 향후 국정조사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예고편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금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의혹을 밝혀내기 위한 국정조사에 이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마저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선내에서 구조를 기다리라"는 말만을 철썩같이 믿었던 293명의 승객들, 그리고 아직까지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11명이나 되는 실종자들은 과연 이 모습을 어떻게 바라 보고 있을까.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