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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직면했을 때 사람은 누구나 눈물을 흘리게 마련이다. 더불어 처참할 때도 눈물을 흘린다. 지나간 50여 년간의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이 흘린 고통과 한의 피눈물은, 결국 이 나라의 민중들이 얼마만큼이나 시달림 속에서 살아 왔는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표상인 동시에 증거이다.
양심이 돈에 뭉개지고 도덕이 현실이라는 미명 속에서 질식해 가는 안타까움을 지켜보며 흘린 눈물과 더불어 배고픔에 시달리며 쏟아내던 그 눈물들은 한없이 우리의 옷자락을 적시었었다. 지금껏 흘린 눈물의 십분 일만이라도 기쁨과 환희의 눈물이었다면 이 민족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슬픔이 지나면 절망이 다가오고, 절망이 사라지면 처절한 고통이, 메말라버린 눈물주머니를 쥐어짜며 이 나라 민중들의 가슴을 파고들었었다. 이 모두가 이 땅의 민중들이 타고난 운명이려니 생각하기엔 거북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요즈음도 이 나라의 민중들은 또 다른 서글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젊디나 젊은 생목숨을 바쳐 가며 울부짖던 그 많은 민주 열사들의 혼백이 이 산하를 떠돌며 지켜보고 있건만 우리는 그들을 향해 그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나약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젊음들이 또다시 고통의 나날을 보내며 싸워야 우리가 추구하는 참다운 세상을 이룩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세상만이라도 만들어 양심과 도덕의 숨 줄기나마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민중의 꿈은 영원히 이루어 낼 수 없는 상상의 세계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근간 5.18과 6.10항쟁에 이은 줄기찬 투쟁으로 정권교체를 이룩하였을 때만하여도, 최소한의 양심만이라도 소외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려니 하고 생각한 국민들은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왔지만,켜켜이 쌓인 모순과 부조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우리는 또다시 소슬바람 몰아치는 황야로 내몰리고 말았다.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개혁은 아닐지라도 양심과 도덕이 능멸 당하는 세상만은 아닐 거라고 기대하였던 희망은 특정집단의 악의적인 저항에 절망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었다. 사회의 개혁은 차치(且置) 하고라도, 정치 집단과 정부 관료 사회의 개혁만이라도 사심없이 추진하여 민중들이 살아가며 손가락질하지 않는 정권으로 자리잡아가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와 너무도 먼 거리에까지 달려와 있다. 정권의 힘은 민중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양심을 가진 민중들은 정부 관료들의 탐욕과 나약함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이러한 사회, 이러한 정권을 바라고 한평생 젊음을 바쳐 독재 타도를 외치며 투쟁해 왔단 말인가? 모두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노라면 뜨거운 눈물이 두 뺨에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커다란 기대 때문에 느끼는 실망이 아닌 최소한의 바램마저 허물어져 버린 허탈감에서 오는 비애이며 허무인 것이다. 세간의 민중들이 체념 어린 목소리로 외치는 말들은 한결같다. 한 울타리 속에서 말 맞추고 뜻 맞추며 공존 공생 해온 그들인데, 그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십보 백보요, 도토리 키 재기와 다를 바 없다는 푸념에 대하여 정권의 관료들은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비운의 땅,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힘없는 민중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은 결국 듣는 이 없는 허공의 메아리일 뿐인가? 권력을 가진 그들의 시간도 흘러가고, 고달픈 민중들의 시간도 흘러 민중들은 슬픔과 고통과 한을 물려주고, 권좌의 나으리 들은 부귀와 명예를 물려주는 악순환만 이어질 것인가?
밑바닥 인생의 일 년 생활비가 권력층 아녀자의 외투 한 벌 값도 안 되는 아이러니의 나라, 이 고통스러운 사회의 모순은 깨뜨릴 수 없는 철옹성인가? 그래도 그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만, 일 년의 생활비가 권력층과 외투 한 벌 값도 못되는 고달픈 인생들은 밑바닥을 떠돌며, 일생을 보낸다. 고통과 허무와 한없는 비애를 그 무슨 보물단지인양 가슴에 부둥켜안고…!
역겨운 모순에 시달리며 이루어질 수 없는 최소한의 삶을 위해 사회의 밑바닥에서 표류하는 민중들은 오늘도 거리를 떠돌고 있다. 한잔의 막걸리로 정신을 흐려 시름을 달래이며 고단한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어 보려고 발버둥을 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