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돌고 돌고 돌아 정홍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사퇴 이후 새로운 총리후보를 인선하지 않고 사퇴의사를 밝힌 정홍원 총리를 유임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정홍원 총리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이후 두달이 넘게 진행된 신임총리찾기는 헛심만 쓴 채 아무런 소득없이 끝나고 말았다. 소득은 커녕 오히려 그 두달 동안 안대희 후보자와 문창극 후보자의 자격검증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론분열과 갈등의 상흔만 깊이 남겨진 꼴이 됐다.
|
이 정치적 참사의 본질적 책임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에 있다. 국민정서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인사들을 무대 위로 올린 장본인들이 때문이다. 두명의 인사가 연거푸 낙마한 이유를 신상털기식 인사검증, 왜곡된 여론, 특정 언론의 악마의 편집 등에서 찾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자세는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결코 올바른 처신이 아니다. 음식점의 형편없는 음식을 타박하는 손님을 식당주인이 탓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식당은 손님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여전히 적반하장식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총리인선 실패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은 눈꼽만큼도 없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창극 후보자의 사퇴 이후 박 대통령이 보인 반응이나 정홍원 총리 유임에 대한 청와대의 배경설명을 보면 그 어디에도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을 언급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었다는 박 대통령의 고심' 속에 이런 참극을 초래한 원인과 책임에 대한 성찰은 존재하지 않았다. 좌와 우로 양분되어 있는 인간의 뇌구조를 가지고 이토록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뿐이다.
어쨌든 정홍원 총리는 유임됐다. 사의를 표명한 총리가 유임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란 덤이 부여된 채. 이 덤이 박근혜 정권을 위한 상승작용으로 나타날 지, 긁어 부스럼우로 나타날 지는 속단할 수 없다. 다만 정홍원 총리의 유임으로 국정공백이 메꾸어지고 국론분열이 사라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은 분명하다. 입은 삐뚫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사실 정홍원 총리시절 국정이 제대로 운영된 적이 언제 있었으며, 국론분열이 없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카메라 앞에서는 화합과 통합, 정의와 공정, 원칙과 상식, 법치와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뒤에서는 국민의 절반을 '종북'으로 매도하고, 불의와 불공정, 반칙과 편법, 특권과 불평등으로 국정을 운영해온 이 정부가 어떻게 정홍원 총리 체제로 국정과제와 국가개조를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차라리 그보다는 썩은 고목에 새순이 돋아나기를 기대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
정홍원 총리 유임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겉다르고 속다른 박 대통령과 이 정부의 위선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촌철살인의 비유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회찬 전 의원은
"정홍원 총리 유임은 국무총리 내정자들을 잇따라 자진사퇴 하게 한 국민여론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보복인사입니다. 음식 상한 것 같다며 다시 해오라니까 먹다 남은 음식 내오는 꼴입니다"라며 정홍원 총리 유임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자신있게 내세웠던 두명의 총리후보가 예상밖으로 난타당하며 쓰러졌다한들 그만두겠다는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빠질뿐더러 속된 말로 영 구리다.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개각을 통해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계획도 빛좋은 개살구임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 누구도 낡은 술 부대에 새 술을 보관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하면 술이 그 부대를 터뜨려 술과 함께 술부대까지 다 못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술은 반드시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 정홍원 총리 유임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명분도 실속도 모두 다 잃었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