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2012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초기내각을 위한 공직후보자들의 면면을 공개했다. 당시 박근혜 당선인 측은 (이미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낙마했기 때문에) 현미경 검증을 통해 공직에 적합한 인사들을 엄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엄선했다던 장관후보자들의 신상에서 하나둘씩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당선인 측은
"대부분 검증과정에서 확인한 사항"이며 이러한 의혹들은
"과장되었거나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후보들에 문제가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자체검증을 통해 이미 확인한 내용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화하지 못할 정도의 결격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며 국민들의 눈높이에도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당선인 측의 주장과는 다르게 언론을 통해 장관후보자들의 각종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란 별칭으로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던 이명박 정권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및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 편법증여, 이중국적, 본인 및 자녀들의 군면제' 등의 각종 의혹들이 차고 넘쳤던 것이다. 급기야 몇몇 후보자들은 청문회조차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어야 했고, 또 몇몇은 청문회까지 버티기를 하다가 여론을 감당치 못하고 낙마해야만 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 중 하나가 인사문제였다며 자신은 그와는 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박근혜 당선인의 체면이 제대로 구겨진 장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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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인사청문회의 과도한 검증이 문제라며
"신상털기식 검증은 문제가 있다. 이러다가는 좋은 사람들이 청문회때문에 기피할까봐 걱정이다. 정책검증은 공개적으로 하고 신상검증은 비공개로 하는 등 청문회를 이원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누구보다 공직인선에 심혈을 기울여야할 최종인사책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발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하는 공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좋은 사람들의 기준이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음으로 사퇴의사를 밝혔음에도 아직까지 총리의 직을 수행하고 있는
'식물총리' 정홍원 국무총리는 인사청문회 당시 위장전입 여부를 추궁하는 야당위원에게 '그 당시 관행'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매우 억울해 했다. 관행이란 사용하기 참 편리하고 용이주도한 표현이자 행동지침이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바로 그 관행때문에 유원지에 쓰레기도 투척하고, 무단횡단도 하고, 새치기도 할 수 있다. 바로 그 관행때문에 기득권들은 세금도 탈루하고, 부동산 투기에, 논문표절에, 편법증여에, 군면제에, 위장전입도 아무 꺼리낌없이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관행때문에 김대중 정부에서는 두 명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달아 낙마해야만 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2년 한나라당은 장상 후보자와 장대환 후보자의 총리 임명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들이 주민등록법 제 10조 '위장전입'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위장전입'을 고위공직자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결적사유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현 새누리당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이를 주도하던 정당의 당대표였다. 그러나 이제 '위장전입'은 고위직 임명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 관행으로 굳어져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과 몇년만에 자신이 주도하며 태클을 걸었던 '위장전입'이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위장전입' 국무총리에, '위장전입' 안전행정부 장관까지 국민들이 골치아파하는 '위장전입'의 족쇄를 박근혜 대통령이 풀어준 셈이다. 상황에 따라 이토록 쉽게 손바닥을 뒤집은 정치인에게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란 수사가 붙을 수 있다니 불가사의도 이런 불사가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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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자 중 세번째의 낙마자였다. 이는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공직자의 낙마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가 대통령 자신의 독단과 독선적인 인사스타일에 기인한다는 것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잘못된 사실을 유포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여론이 문제이지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검증을 해 국민의 판단을 받기 위해서인데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앞으로는 부디 청문회에서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서는 소명의 기회를 줘 개인과 가족이 불명예와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그녀의 유체이탈화법은 이명박에 익숙했던 시민들마저 아연실색케 만드는 경지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을 위해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한 소명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읍소가 애처롭게 들리기는 하지만 결국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은 전혀 없다는 참으로 몹쓸 발언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한국의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부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인사청문과정을 손질하는 것이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초 인사청문회에서 대량의 불량품들이 양산되자 인사청문회을 이원화해야 한다는 속내를 피력한 바 있다. 고위공직자들의 개인신상과 도덕성을 비공개로 검증한다면 '좋은 사람들'이 국가요직에 두루 배치되고, 국정을 원하는 데로 이끌어 갈 수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군불을 때며 이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의 윤상현 사무총장은 어제(25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사퇴 이후 '인사청문회의 이원화'를 들고 나왔다.
"이제 인사청문제도를 개선해야겠다. 신상 문제를 가지고 고위공직 후보자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호통청문회, 망신주기 청문회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고위공직을 기피하는게 현실이다"
'좋은 사람들'이 '많은 인재'로 바뀌어 있을 뿐 기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윤상현 사무총장의 인식은 대동소이하다. 공직 후보자의 신상문제와 도덕성보다 업무수행능력과 자질을 우선하고, 나아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누가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을 간택하겠단 의미다. 필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처럼 망칙한 공직인선기준을 대놓고 제시하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업무능력과 자질만 있으면 편법과 반칙, 불법을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자들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가 정상일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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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임기초 국정공백이라는 출구전략이 없었다면 박근혜 정권의 초기 내각에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또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무색하리만큼 현 내각의 수준도 보기에 민망할 지경이다. 게다가 앞으로 이 정부의 인사문제가 개선될 가능성도 요원하다.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를 계기로 개각을 단행해서 국가개조(?)에 박차를 가하겠다더니, 국무총리 후보자는 두명이 연이어 낙마했고 청와대 교육수석에 제자의 논문을 가로챈 사람을, 교육부장관 후보자에 논문표절을 한 인사를, 국정원장에는 정치공작을 일삼던 자를 기용하겠다 한다. 이런 대통령과 정부체제 하에서 공직기강이 바로 서고 국가혁신이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면 그는 바보 아니면 외계인 둘 중의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청문회를 이원화하자니 시쳇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국민의 알권리는 둘째치고라도, 인사청문회가 있음에도 공직주변에 무자격자들이 파리떼처럼 꼬이는 마당에 이마저도 없다면 대한민국의 공직사회는 무법천지가 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 아닌가.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게 더 안전해 보인다.
우리가 그동안 사회공동체를 통해 학습해온 도덕률과 사회 규범 그 어디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윤상현 사무총장이 거론하는 자들을 '좋은 사람들'이며 '인재'들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저 '탐관오리'에 불과한 자들을 부리기 위해 인사청문회까지 손보려고 하는 대통령과 정당이 집권하는 나라가 건강하고 합리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이들의 집권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합리와 공정, 보편적 상식과 정의같은 시대적 가치들은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희귀한 유품으로 전락해 버리게 될 것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