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선거 결과를 잘못 읽어 기존의 독선과 불통을 되풀이한 현 정권의 오만을 심판하고 견제해야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6.4선거의 결과를 놓고 언론은 무승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17개 광역 단체장 후보들의 득표수다.
서울 정몽준, 경기 남경필, 제주 원희룡 등 새누리당 전국 17명 후보의 총 득표수는 1,070만 표였다. 반면, 서울 박원순, 경기 김진표, 제주 신구범 등 17명(부산과 울산의 야권 단일 후보 포함) 후보의 득표수는 1,120만 표였다. 여야 간에 50만 표 차이가 났다.
2년 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야당 후보에게 108만 표를 이겼다. 1년 3개월 만에 150만 표가 달아난 것이다. 밀물이 썰물로 바뀐 것이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똑같이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야당 처지에서 보면 정권 교체의 문이 열렸다고 할 만하다.
세월호 참사 속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우왕좌왕하며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냈다. 여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혹독한 민심의 비판을 생각하면 6.4선거는 야당으로서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분명하다. 또한, 호남에서 전남 8명, 전북 7명 등 15명의 기초단체장 후보가 무소속에 패배한 것은 야당으로서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6.4선거를 통해 국민은 대한민국호의 방향이 바뀌기를 희망했다. 그 상징이 교육감 선거에서 무려 13명의 진보 개혁 성향 교육감이 탄생한 사실이다. 우리 국민은 숨 막히는 무한 경쟁과 교육격차 그리고 허리가 휘는 사교육비 부담에 대한 인내가 한계점에 다다른 상황이다. 어떻게든 답답한 교육 현실을 바꿔보고자 하는 열망이 진보 교육감 무더기 당선으로 표출된 것이다.
세월호에서 우리 학생들은 순진무구하고 착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방송에 순응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때 '왜? 왜? 왜?'라고 질문했어야 한다. 우리 교육이 <질문이 있는 교육>, <질문이 있는 교실>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다.
교육 현장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군사 등 전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세월호의 교훈이었다.
6.4선거에서 안타까웠던 것은 의제의 실종이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국가적 의제로 떠올라 여야 간에 뜨거운 쟁점이 되었던 사실과 견주어보면 참 무기력한 선거였다.
지금까지 돈과 권력, 경쟁과 효율, 성장과 개발에만 초점을 맞춰오다 세월호 참사에 이른 정부 여당의 낡은 철학과 기조에 대항해 야당은 적극적인 대안 의제를 제시하고 띄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유병언 씨를 붙잡아 법정에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세월호의 진범은 셋이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고물 선을 들여다 돈을 벌게한 규제 정책 실패가 첫 번째 주범이다. 1년짜리 비정규직 선장에게 대형 여객선 승객들의 생명을 맡긴 비정규직 남용이 두 번째 주범이다. 철도 민영화, 의료 민영화, 약국 법인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물론 물에 빠진 국민을 구조하는 것까지 민영화해버린 시대착오적인 민영화 철학이 세 번째 주범이다.
6.4선거는 안전과 생명, 협동과 행복 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서 갈증이 이는 새로운 가치를 정책화하고 의제화하기 좋은 결정적 기회였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결국, 6.4선거를 놓고 다수 언론이 누구도 이기지 못했고 누구도 지지 않았다는 해석을 내놓음에 따라 국민은 혼란스러워졌다. 이 과정에서 문창극 사태가 생겼다. 문창극 사태는 명백하게 박근혜 대통령이 6.4선거를 오독한 결과이다. 대한민국의 방향을 바꾸라는 세월호 민심의 신호를 거꾸로 읽은 것이다.
문창극 사태가 심각한 것은 과거 총리 후보자들이 개인적 도덕성 문제로 낙마했던 것과 달리 그의 국가관과 역사관이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문 후보자는 공개된 동영상 강연에서 식민사관과 사대주의, 그리고 극단적 반공주의 성향을 나타냈다. 눈부시게 변하는 시대사조와 국제 정세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관점의 소유자라는 것이 드러났다.
특히 일제 식민지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식민사관은 국민감정을 직접 건드렸다. 마치 일제의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발언을 연상케 하였다. 아베는 “나, 아베 노부유키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조선인들에게 식민사관을 심어 놓았다. 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싸울 것이고 노예적인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문창극 후보자의 낙마는 시간문제일 뿐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처받은 국민의 자존심과 주변국들 사이에서 실추된 국격은 회복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7.30재보선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6.4선거에서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변화에 대한 신호를 보다 확실하게 보내는 것이고, 6.4선거 결과를 잘못 읽어 기존의 독선과 불통을 되풀이한 현 정권의 오만을 심판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7.30선거의 결과는 2016년 20대 총선까지 앞으로 2년여 동안의 정국 주도권뿐만 아니라 국정 운영 철학과 기조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