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의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을 또 다시 연기했다. 당초 13일 제출이 유력했으나 이를 뒤로 미루더니 18일에도 임명동의안 및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한발 더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 이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반대 여론이 워낙 극심한데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임명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것으로 청와대의 입장변화를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문창극 후보자를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은 한마디로 '진퇴양난'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명을 강행하자니 국민여론에 역행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지명을 철회하자니 구멍난 인사시스템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은 임기초부터 붉어진 최악의 인사참사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다. 이래저래 골치아픈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문창극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를 한다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의 사퇴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책없는 인사시스템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절대조건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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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으로 그동안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며,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에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분" (청와대의 발탁 성명 중에서)
애시당초 청와대가 문창극 후보자를 지명한 이유가 무색해질만큼 그의 과거 행적들은 국민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국민정서에 반하는 그의 천박한 언행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이끌어 낼만큼 도발적이었으며 모욕적이었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의 자존감에 심각한 내상을 입힌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 요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의 필터링에는 걸리는 제반 문제들이 왜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필터링에는 걸리지 않느냐에 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공직후보들이 이런저런 이유들로 줄줄이 낙마를 했다. 그때마다 각계각층에서는 나사풀린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을 뜯어 고치고, 박 대통령이 '밀실인사, 나홀로 인사' 스타일을 버려야만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청와대 내의 인사검증시스템은 없거나 혹은 작동하지 않았고,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여전히 독단과 아집으로 완고하기만 했다. 경험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다면 시쳇말로 답이 없다. 문창극 후보자 지명을 둘러싼 논란은 답이 없는 이 정권이 얼마나 국민들을 힘들게 만드는지 여실히 보여준 '참극'의 결정판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새누리당은 공직인사에 대한 인사논란이 붉어질 때마다 야당의 발목잡기와 종북좌파들의 반대를 위한 반대 때문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를 펴왔다. 이를 증명하듯 박근혜 정부의 임기 초 정부조직법개편안 파문 당시에도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까지 자처해가며 인사논란의 본질을 흐리는 자가당착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인사논란의 원인 제공자는 실제로 따로 있다는 것이 이번 문창극 후보자의 논란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그 원인 제공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박 대통령 자신과 그리고 청와대의 가장 강력한 막후실세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국무총리 후보군에서 거론되지 않던 문창극 후보자의 등장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문창극 후보자는 2013년 김기춘 비서실장이 박정희기념사업회의 초대이사장이었을 때 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이는 문창극 후보자를 김기춘 비서실장이 천거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수용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만약 이런 도식이 맞다면 (맞을 것이다) 인사검증은 아예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청와대 내에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반 문제들로 직언을 할 수 있는 인사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창극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의 정치적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있다는 것은 명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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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후보자의 거취는 박근혜 대통령의 귀국 이후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거취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상관없이 최종인사권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인사과정에 개입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은 면키 어려워 보인다. 특히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우 야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내에서 조차 이번 참사의 책임을 물어 사퇴를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는 7·30 보궐선거와 당내 헤게모니를 의식한 새누리당 내의 정치공학적 측면이 개입된 결과다)
말 잘듣는 극우보수총리를 기용해 세월호 정국으로부터 벗어나는 한편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하려 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한 수는 자충수요 자승자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명 파문으로 말미암아 세월호 참사의 태풍마저 비껴간 김기춘 비서실장의 거취가 위태로워졌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없는 박근혜 정부는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 그의 향후 거취문제가 집권 중반부로 향해가는 박근혜 정부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영화로 치자면 반전도 이런 반전이 또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더니 이럴 때 보면 정치가 참 묘하고 어렵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