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경기 도중 심판은 소극적인 경기운영을 하고 있는 선수에게 '패시브'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벌칙을 부여할 수 있다. '패시브'를 받게 되면 해당선수는 '30'초 동안 바닥에 몸을 밀착시키고 상대선수의 공격을 방어해야만 한다. 선수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팔을 벌리고 무방비 상태로 바닥에 엎드려 있는 선수의 모습은 상당히 굴욕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시각적으로도 그렇고, 내용적으로 봐도 그렇다. '패시브'를 받은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30'초 동안 바닥에 몸을 붙이고 악착같이 그저 버티는 것 뿐이다. 저항은 고사하고 무방비로 노출되어 엎드려있는 무력감이란 굴욕과 수모 그 자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30'초의 시간만 견뎌내면 다시 원래대로 상황이 되돌아간다는 사실은 해당선수에게 굴욕과 수모를 감내할 동기를 부여해 준다. '어떻게든 이 순간만 버텨내자. 그러면 기회가 올 것이다. 이 굴욕과 수모를 되갚을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는 생각이 선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와신상담'하는 오나라왕 부차의 심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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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비약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기자회견의 내용과 태도를 보며 문뜩 레슬링 경기의 한장면이 떠올랐다. 국민정서와는 몇십억 광년은 떨어져 있는 듯한 역사인식을 지닌 이 시대착오적인 사내가 여론의 빗발치는 사퇴요구에도 불구하고, 궁색한 변명의 기자회견까지 자처하며 버티는 모습이 레슬링 선수들의 그것과 닮아도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들과 이 사내의 버티기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어떻게든 인사 청문회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문창극 후보자의 인식의 저변에는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지명의지와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측면지원에 대한 확신이 깔려있다. 통상 이렇게까지 여론이 악화되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국정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본인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 최근에 낙마한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와 인수위 시절의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문창극 후보자는 저들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는 국민의 공분과 지탄을 받고 있음에도 버티고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과의 사전교감과 공조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국민여론과 정서를 완전히 무시하면서까지 그를 고집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박근혜 정권의 공직인사과정은 인사검증시스템의 난맥, 부실한 후보자 검증, 의혹 제기, 여론의 악화, 대통령의 임명 강행 수순이 하나의 공식으로 굳어진 느낌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에서 이의 부당함과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해도 요지부동이다. 이는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나아가 자신의 판단은 언제나 옳다는 독단과 독선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인식이자 태도다.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된 불통의 통치스타일은 이제 이 정권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훗날 역사는 이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로 '불통'을 선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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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버티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으로부터 기인하며, 박 대통령의 강력한 오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책임총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사내가 향후 허수아비와 청소로봇의 중간쯤 되는 어정쩡한 포지션을 취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버티는 문창극 후보자 위에는 '짐이 곧 국가'라고 생각했던 독재자의 'DNA'를 가지고 있는, 귀막은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독단과 독선에 빠져있다한들 일본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역사인식을 지닌 국무총리를 고집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설사 문창극 후보자가 인사 청문회까지 버틴다고 해도 없는 자격이 다시 생길 리도 없거니와 국민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를 용납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서두에 레슬링을 언급했다. 선수들이 '패시브'의 수모와 굴욕을 견딜 수 있는 것은 '30'초의 시간 뒤에 그들에게 이전과 동일한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창극 후보자의 경우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애초부터 자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자격이 다시 회복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한 굴욕과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을 뿐이다. (아직 본격적인 인사검증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문창극 후보자의 총리지명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민족정서와 직결된 일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재림을 꿈꾸는 일본내 극우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 대한민국 국무총리란 그 자체로 참극이자 역사적 수치다.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하므로 마음으로야 이 정신나간 짓을 얼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주지한 바와 같이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민족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이미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빨갛게 익을 정도의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사안인 것이다.
이쯤에서 그만 멈추라. 차라리 문창극 후보자보다는
'부동산 투기, 탈세, 공금횡령, 위장전입, 논문표절, 이중국적, 군면제, 전관예우' 등의 전리품을 챙긴 자들이 오히려 대한민국 국무총리로서의 자격이 십센티쯤 더 있다. 이제 그만 멈춰라. 역사를 부정하고 민족을 모욕주는 이 황망한 굿판을 이제 제발 멈춰라.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