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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재충전하자 생각하며 커피 한 잔과 점심을 먹기 위해 일하다 카페를 찾아들지만, 마음 편하게 카페를 나선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큰 파도 앞에 서 있는, 그런 기분입니다. 요즘 들어 들리는 한국의 뉴스가 계속해서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까닭입니다.
뉴스를 살펴보다 보니, 이미 친일 발언 행각이 알려져 고초(?)를 겪고 있는 문창극 이외에도 정종섭 안행부 장관 내정자가 4.3 이 공산세력의 무장봉기였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또 이른바 빤*(영어 원문으로는 panty라고 하지만 표준말로는 panties 라는 복수로 불러야 맞는 핵심 속옷을 뜻하는 명사 ^^;)목사로 알려진 보수 극우 기독교 세력의 대표적인 목사 중 하나가 장로인 문창극을 옹호하면서 박원순 시장의 재선에 대해 심하게 폄훼한 것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 이렇게 친일 보수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 아니, 아예 문창극 같은 인물을 총리 후보로 데려오는 것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정치적으로 이것은 대통령이 자기가 속한 당에조차 엄청난 부담을 주는 '해당 행위'라고까지 봐야 할 텐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또, 이런 정치적인 부담인 사안을 앞에 두고 대통령은 훌쩍 나라를 떠나고. 이 일련의 상황들은 어떤 해석이 가능한 것일까요? 늘 '왜?'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이 상황이 쉽게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문창극의 자진사퇴만이 국정의 부담을 더는 답일거다 생각하지만, 생각이 짧아서 이런건지... 아니면 실질적 대통령은 박근혜가 아니라 김기춘이라는 소문들이 차라리 맞는 이야기로 치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오히려 후자가 사실에 가까울 거라는 추측들이 인터넷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면 우습게 흘려들을 일만은 아닐 거란 생각도 듭니다.
유신을 지금 이 땅에 가져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어쨌든 저들이 '애국'이라고 말할 때는, 그들이 '나라'라고 굳게 믿는 어떤 시스템이 있다는 이야기일겁니다. 저들이 믿고 있는 가치인 애국이란 것은 이 나라가 '국가주의적인 나라'임을 전제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보수 표심'이라는 것이 작용하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그 국가주의적인 체제에 순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가 속한 사회 계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누리당에 표를 던지는 가난한 노인의 마음은 그가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에 자기의 표를 던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승만 때부터 박정희 전두환을 거쳐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반공주의적인 세계관입니다.
이 노인들은 적어도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깨어나지 못한 것은 이 사회의 핵심적인 교육 시스템이 이같은 생각들을 재생산해 왔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라는 판타지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이른바 '전신앙'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 것입니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아이들에게 강제로 어떤 생각이나 믿음을 주입시키면 이것 자체로 신을 강림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우리의 어르신들이 가진 반공에 대한 맹종은 그들이 살아온 세계관이 그렇게 형성돼 왔기 때문입니다.
김기춘이나 혹은 기득권층의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은, 이런 전근대적인 생각을 가졌다는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 그것을 이용해 자기 세력을 늘리는 데 쓴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국민이 아니라 그들의 호의호식과 안녕, 권력을 누리는 즐거움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뼛속까지 체질화돼 있다 보니 국민을 위한 정치는 아예 처음부터 없다는 것이고, 세월호 사건에서 보여줬듯 국민은 지켜져야 할 존재가 아닌, 희생되어도 별 상관없는 존재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은 그저 표 하나하나일 뿐이고(그나마 조작도 가능한), 모시는 대상이 아니라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는 소모품인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주의자들의 갖는 한계입니다. 그나마 그 국가를 부강시킨다던가 번영시킨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 그 국가를 위해 개인 권력을 최대한 늘리려고 했던 것이 우리 역사 안의 유신이란 것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그 유신 헌법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 지금 청와대에 앉아 있는 김기춘이고.
국가라는 탈을 쓴, 자기 자신들의 권력을 영속화 하고 싶어하는 자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이게 될지 솔직히 조금은 불안하기조차 합니다. 문창극 같은 자를 총리 후보에 앉혀 놓고 그것을 어떻게든 관철시켜보겠다고 하는 저들의 속내에 영구집권에 대한 욕망이 스멀스멀 살아 있다고 보는 것이 과연 무리일까요? 물론, 그들의 생각에 철퇴를 박아 줘야 할 것은 국민의 권리임과 동시에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지금은 21세기지만, 프랑스 대혁명부터 시작해 우리나라에서는 4.19와 5.18, 그리고 6월 항쟁으로 말해지는 그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봐야 하는 그런 우리의 처지가 좀 딱하긴 하지만, 역사의 순리를 어떻게 감히 어기겠습니까?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