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북한은 누구인가? 지구상에서 소탕되어야 마땅한 최악의 적성국인가? 아니면 상호 협력을 통한 공동 번영의 대상인가? 그래서 마침내 평화 통일을 이루어야 할 민족의 운명 공동체인가?
북한의 3대 세습을 두고, 이를 두둔할 생각은 결코 없다. 정치적 탄압과 인권 문제 또한 개선되어야 할 점이 크게 상존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그에 비례해 얼마나 더 사정이 나은가? 물질적 퐁요는 있겠으나 극심한 양극화는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끼니를 굶는 인구까지 있다. 양심과 사상에 대한 공권력의 탄압이 엄존하며, 정적에 대한 무차별적 박해 또한 막심하다.
박근혜 정권 들어, 통일 및 평화를 운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굳이 나쁘게 여길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발언의 진위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허약한 사상과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아울러 극심한 양극화 해소 정책을 통한 인간적 삶의 가치를 보다 충만히 이끌어내야 한다.
인간은 본디 현재의 삶에 비해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북한의 경제력이 상승될수록, 그 내부적 인권 문제 또한 개선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의 경우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현현된 사실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에 대한 공격적인 비난보다는 끈질긴 인내심을 갖고 대화와 상호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이유다.
진보층 다수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몰라서 그들에게 시비를 묻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수록 더욱 폐쇄되고 또 상황만 악화되리란 점을 우려해서다. 오히려 북한이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길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는 통일 이후까지를 고려한 다목적 포석이다. 남북한 사이의 극심한 경제적 편차로 인해 겪게 될 사회적 불안 요인을 줄일 수 있겠다는 점에서 그렇다.
통일 이후, 우리에게 궁극적인 적성국은 과연 어디일까? 의외로 적은 늘 가까운 곳에 있을 개연성이 높다. 영토가 작은 통일 국가로서 한층 자주적이고 또 주도적인 주권 행사를 위한 방편으로 핵무기 보유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역사를 통해 전망하고 또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철저히 대비해야만 비운을 막을 수 있겠기에 그렇다.
<정성태 : 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