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홍원 총리의 후임으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내정됐다. 안대희 전 총리 지명자의 예방치 못한 낙마로 인선에 고심에 고심을 했다는 박근혜 대통령, 그녀는 결국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에 버금가는 극우논객을 후임총리로 선택했다. 그러나 또다시 국민대통합에 역행하는 자가당착이 드러난 인사란 점에서 씁쓸하기 그지없다.
"언론인 출신으로 그동안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며,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에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분"이라는 청와대의 발탁배경 설명은 그래서 더욱 장황하게 들릴 뿐더러 이율배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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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대로 문창극 총리후보자는 언론인 출신이다. 특히 그는 중앙일보에 '문창극 칼럼'을 연재하며 시국현안에 대해 뚜렷한 색채를 지닌 글을 써왔다. 여기서 말하는 뚜렷한 색채란 보수우익 성향을 지칭한다. 보수우익 성향은 모두 악한 것인가. 물론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헤겔의 변증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모든 현상은 그 자체로 끊임없는 모순과 갈등을 겪으며 변화하고 발전해 나간다. 따라서 합리적 대안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모순과 갈등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 기반 위에서 통합의 과정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수우익들은 변화와 갈등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한다. 변화와 갈등을 인정하지 않으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포용에 인색하고,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모든 것을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빌자면) '적'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문창극 총리후보자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을 지녔다. 그는 2009년 용산참사의 과잉진압을 주도한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옹호하며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두고두고 이 나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경찰청장의 목은 데모대가 쥐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용산참사의 피해자들인 주민들이 이 나라에 악영향을 끼치는 데모대에 불과할 뿐이고, 공권력을 무리하게 행사한 김석기 전 청장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보고 있다. 그의 시야에는 용삼참사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엔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인식이다.
보편적 복지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는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무상급식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효율성과 다양성을 거론하며 무상급식이 획일주의적이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무상급식이야말로 가난을 이용하는 포퓰리즘이라고 단언한다. 나아가 무상급식과 같은 보편적 복지에 길들여진 국가 의존형 인간들이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지켜낼 수 있을지, 가정의 가치를 바로 세울 수 있을지, 그런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할지, 결국 전체주의와 공산주의형 인간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지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과 가정을 가치를 바로 세우고 나아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초를 지키는 일과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의 주장은 무상급식에서 시작해 개인의 자유와 존엄, 민주주의까지 거론하는 논점이탈의 궤변일 뿐이다.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적시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지난 2009년 8월 4일 그는 중앙일보에 '마지막 남은 일'이라는 칼럼을 실었다. 그는 이 칼럼에서
"사경을 헤매는 당사자에게 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그러나 이런 제기된 의혹들을 덮어 두기로 할 것인가"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거론했다. 이명박 정권을 향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언급하며 고언을 마다않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산증인을 향해 그의 말처럼 참으로 가혹하고 무례하기 그지없는 짓을 한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은 이미 사실무근으로 판명난 사안이었다. 그런데 그는 근거없이 떠도는 의혹들을 모아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직 대통령을 향해 죽기 전에 마지막 일을 하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에 속하는 품성이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그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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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까지 지명했던 많은 고위공직인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낙마를 했다. 그런데 그 이유들이 참으로 낯부끄러운 것들 일색이다. 부동산 투기, 공금유용, 탈세, 비자금 조성, 성접대 등등 도무지 공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위장전입, 논문표절, 본인 및 자녀의 군면제, 이중국적 등은 애교로 봐줘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마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가당치 않은 말이다. 공직의 저급화를 부추기는 이런 발언들을 우리는 경계해야만 한다.
벼슬을 탐하는 자들은 예로부터 늘 있어 왔다. 이런 자들을 일컬어 사람들은 '탐관오리'라 명명했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하려 했던 많은 고위공직자들 중 상당수가 '탐관오리'에 해당되는 사람들이었다. 사사로이 벼슬을 탐하는 자들과 이런 자들을 계속해서 임명하려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라 믿는다면 바보이거나 그 자신이 탐욕에 찌든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다.
물론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탐관오리'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도덕적으로 공직을 수행할만한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도덕성은 그가 공직에 적합한 인물인가를 판단하는 필요조건의 하나일뿐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그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보수우익논객답게 국민화합과 통합에 반하는 인식과 태도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인사다. 이런 사람을 또다시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는 것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민통합의 의지가 애시당초 없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통합이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사상과 인식을 강요하고 강제하는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통합을 의미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율과 소통, 화합과 조화의 민주적 리더십이 필요한 21세기에 전근대적인 20세기 관치치대의 통치철학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필자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금까지 보여준 전력으로 볼 때 그가 공직사회를 개혁하고 표류하고 있는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냉정하게 볼 때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사람이 쌓아온 이력은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명이 박근혜 정권의 또 다른 인사 '참극'으로 귀결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