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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향 생각이 나서, 유튜브에서 '서촌'이라는 단어를 넣어 동영상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과거 그냥 '우리 동네'였던 곳이 '서촌'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문화적 트렌드가 되어 있는 모습은 그리움을 자극하기도 했고, 낯설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긴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나 살던 곳이 이리도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그 세월의 변화를 거부하기라도 하듯 예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곳들을 간간히 동영상에서 보게 되면서, 느닷없이 콧잔등이 시큰해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예, 저는 이른바 사대문 안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입니다. 본적은 정동이고, 한국에서의 삶은 대부분 종로구 누하동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청운국민학교-청운중학교-경복고등학교를 12년동안 걸어 다녔고, 인왕산 산자락을 놀이터 삼아 놀았습니다. 그때 제 놀이 반경은 어린이도서관과 사직공원, 인왕산, 삼청동, 통의동... 등등을 아우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골목길 전신주 곁에서 치기장난과 다방구, 얼음땡 등을 하면서 놀았으니, 게임기를 붙잡고 있는 요즘 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던 셈입니다.
그때의 생각이 나서 가끔 구글 지도로 한국을 찾아가보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주위는 모두 개발됐지만 우리집은 개발의 손길이 피해갔더군요. 내가 살던 집, 그리고 내가 쓰던 방의 창문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하게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던 서울의 많은 다른 부분들은 모두 아파트나 연립 등, 단독주택이 아닌 형태들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단위면적당 사람은 많이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아파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주택들과는 달리 언젠가는 철거해야 합니다. 똑같은 아파트 형태의 주거단지더라도, 제가 살고 있는 시애틀 인근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목조입니다. 이것들은 오히려 한국의 콘크리트 아파트들처럼 단단해 보이진 않더라도 내구성으로는 오히려 낫다고 들었습니다. 철근과 모래와 콘크리트로 만든 아파트들은 결국 골조의 부식으로 언젠가는 재건축을 하거나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한국에 들어서는 아파트들의 규모는 대부분 초고층인 듯 하더군요. 끽 해야 10여층의 아파트가 가장 높았던 과거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어지는 아파트들이 효율적인 주거 해결 정책이 될까요...? 이런 아파트들이 뭐 임대아파트로 짓는 게 아닌 이상, 그것은 '투자 가치'를 부여하고자 짓는 것들이 대부분일 거란 건 저도 압니다. 아파트 하면 대부분 임대아파트를 생각하는 이곳과는 달리 한국은 투자와 매매의 대상으로서 아파트를 바라보니까요.
그런데 요즘 경기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한국의 경기 지표를 보니 꽤 오랫동안 수출이 수입을 초과하고 있습니다. 일견 바람직한 현상인 것 같지만 그 이유를 알고 보니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보이는 착시효과더군요. 그것은 결국 내수가 부진하다는 것을 뜻하고, 더 큰 그림으로 보자면 한국에서 산업 생산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블딥이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봐도 된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아파트들이 신축 혹은 재건축 분양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한국 경제엔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생각해보면 조금 걱정이 됩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제가 한국에 어떤 이해관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이른바 '서브프라임' 사태를 겪었던 사람으로서 한국에도 비슷한 문제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은 개발업자들에게 돈을 빌려줄 것이고, 사람들은 빚을 내어 대형 아파트들을 사지만, 그 가치가 생각만큼 오르지 않고 오히려 폭망하는 순간 개인들이 무너지고, 개발업자가 무너지고, 그리고 은행까지 무너지는 그런 상황이 한국에서 오지 말란 법이없잖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제일 좋은 건 역시 정부가 지출을 늘려 개발사업을 하고,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상위 소득 그룹의 세수를 늘리고 법인세를 제대로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태로는 재기가 불가능할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이는 삼성 총수 이건희 씨의 재산을 이어받게 될 이재용 부회장에게 상속세를 법대로 받아내는 것도 국고엔 조금 보탬이 되겠지요. 문제는 이런 사업들이 이미 한국에서는 포화상태를 이뤄버렸다는 겁니다. 개발 할 곳은 다 개발해 버렸고, 지하철도 다 완성됐고... 그게 안 되니 쓸데없이 강바닥을 파서 돈을 버리기도 했지요. 애초 약속했던 일자리 창출 같은 건 부도가 났지만.
그렇지만 우리에겐 투자처가 있습니다. 북한이죠.
아마 일찌기 고 정주영 회장은 이 점을 제대로 파악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소떼몰이 방북은 어쩌면 원대한 그의 포부의 시작점이었던 것이죠. 문제는 너무 고령이었던 정 회장이 이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이었겠지만, 그래도 개성공단이나 각종 대북 프로젝트의 원 구상은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돈 냄새'를 맡았던 것이지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쳐 이 계획은 어느정도 보다 구체적인 모양을 갖췄으나, 이렇게 차려준 '밥상'을 엎어버린 건 이명박 정부였고, 그 뒤를 이은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오로지 '정치적인 잇속', 그리고 '정권 유지'에만 신경쓴 이 두 정부는 우리가 새로운 뉴딜 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엘도라도'가 될 수 있었던 북한과의 관계를 망쳐버렸습니다.
만일 4대강을 팔 돈으로 이걸 북한에 우리 기업과 노동자를 보내 고속도로를 깔고 제반 인프라들을 만들어 주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우리는 대륙과의 직교역로를 얻었을 것이고, 한국의 온갖 문화적, 사회적 영향력이 북한에 온전히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회동을 가지고 나서처럼, 북한 내의 매파들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남쪽이 쥘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 기회는 지금 되찾기 힘들 듯 합니다. 그것은 최근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전제로 하는 접촉을 계속 시도하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일본은 북한에게 손을 내밈으로서 북한의 핵무장을 은연중에 묵인하고 있는듯한 행보를 취했습니다. 일본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전제로는 일단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자기들이 직접 북한 핵 문제를 타결한다던지, 아니면 자기들도 스스로 핵무장을 해야겠다는 내부적 결정이 세워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미 수천개의 핵무기를 제조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플루토늄을 확보해 놓은 일본이 미국의 간섭을 넘어 스스로 핵무장을 하겠다는 의도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고 봐도 되겠습니다만.
그런데, 일본이 이렇게까지 미국의 간섭을 거스르는 행동의 배후엔 뭐가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은 미국이 지역 패권을 일본에게 넘기는 대신, 중국과의 각을 세우려는 미국의 의도에는 충실해 달라는 일종의 묵인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대신 지금 역시 한국과 같은 내수의 한계와 토목공사의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인 일본의 경제가 북한 특수를 누리도록 눈감아 준다는 전제 하에. 만일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면 한국은 다시 한번 바보가 된 걸로 봐야죠.
위의 가정들은 말 그대로 가정일 뿐이지만, 지금까지 나타나는 일련의 상황들로 볼 때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계산에 일방적으로 놀아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북-일이 핵무장의 실리를 챙기는 동안 한국 정부는 극우 언론인 문창극을 총리 후보로 데려와 국론을 분열시키고,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식대로 가겠다는 것을 분명히 해 버렸습니다. 북한의 김정은은 중국과 일본이 서로 내밀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자기가 노린 경제개발 및 통치자금 확보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북한은 꽃놀이 패를 쥐고 흔들고 있고, 한국은 멍하니 상대의 카드가 뭔지도 모르는 채 미국과 일본이 내미는 카드를 그냥 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