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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ㆍ19혁명 5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날에 정치공학의 성격이 짙은 이야기를 하려니 참 거시기하다. 차가운 서해 바다에서 청춘의 꿈을 안타깝게 접어야만 했던 젊은 수병들을 생각하면 거시기함의 정도는 더더욱 깊어진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 한다. 이왕 등장할 악역이라면 엉터리 부채도사들한테 넘기느니 내가 연기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듯싶다.
이번 지방선거판은 애초부터 정상적 선거가 치러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념과 노선에 기초하는 건전한 정책 경쟁은 정치학 교과서와 신문 사설 속에서 진즉에 박제가 되었다. 친노세력이 장악한 야당의 선거 전략은 죽은 전직 대통령의 영정을 유세차에 싣고 다니는 유훈 정치가 전부였다.
천안함의 급작스런 침몰은 이명박 정권에게 야당의 반칙 작전에 선수를 칠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상대가 반칙하기 전에, 속악하게 표현하면 상대방이 깽판치기 전 내 쪽에서 먼저 깽판 놓을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김 빼기라고 해도 좋겠고, 또는 선빵을 날렸다고 묘사해도 무리가 없겠다. 그렇다면 과연 집권세력은 6월 2일 지방선거 당일까지 천안함 사건으로 정국의 흐름을 유리하게 이어갈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바로 경제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 텔레비전이 평상시처럼 편성되어 방송될 때였다. 내가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광고가 20개쯤 붙어 있었다. 걸 그룹 멤버들이 출연하는 자칭 반(半)리얼 프로다. 평균 시청률은 10퍼센트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광고가 스무 개나 달렸다. 그 전주에 결방되면서 소화하지 못한 광고물량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리라.
여기에 문제의 정답이 있다. 상업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제품광고가 소비자들의 뇌리에 원활하게 도착하지 못하면 기업의 매출은 아무리 미미한 액수일망정 결국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영업이익의 증감에 따라 무수한 월급쟁이들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수많은 주식투자자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소위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현실임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무슨 일이 생길 적마다 쇼와 코미디 등의 예능 프로그램부터 결방시키는 방송국의 관행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귀찮으면 안 할 수도 있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시청률이 높은 예능(오락) 프로그램에 딸려 나오는 광고가 예정대로 집행되지 못하는 사태는 기업들에게는, 즉 자본에게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한도전’도 ‘1박 2일’도 ‘패밀리가 떴다2’도 사라졌다. ‘뮤직뱅크’도 ‘음악중심’도 ‘인기가요’도 자취를 감췄다. 빈자리에는 별로 재미없는, 곧 광고주 입장에서는 입맛이 당기지 않는 콘텐츠가 임시로 들어갔다.
예능 프로그램의 장기 결방은 사회 전반을 우울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소비심리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무작정 천안함 사태를 장기화시키려다가 소탐대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군다나 곧 5월이 시작된다.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이어져 있다.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소비심리가 절정에 도달하는 시점이다. 선물이 필수인 까닭이다. 결혼 도 성수기이다. 기업들은 이 시기에 맞춰 온갖 판촉 전략을 짜내느라 골머리가 아프다.
2. 그런데 어쩌면 대한민국 월급쟁이들은 금년 5월에는 간만에 편하게 지낼 수도 있겠다. 천안함 사태 장기화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 덕분(?)이다. 5월 초의 한가함의 대가를 연말의 상여금 축소나 구조조정 감수로 지불할 터이나.
이명박은 이와 같은 이치를 알 것이다. 그걸 모른다면 어디 가서 CEO 출신이라고 자랑할 자격이 없다. 반면 자신의 캐릭터에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안보 장사’를 시작한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한국의 자본주의가 무모한 북풍 불러오기와는 양립하기 불가능함을 모르는 모양이다. 당연한 결과일 게다. 나경원 씨는 살아오면서 단 한 차례도 힘들게 돈 벌어본 경험이 없겠기에.
부잣집 귀한 딸내미로 자란 탓에 아직은 세상물정에 어둡다고 변명해서는 곤란하다. 명색이 국회의원 아닌가? 나경원 씨는 본인이 부추기는 북풍 부채질하기가 금융위기로부터 겨우 벗어나려는 한국경제를 말아먹을 수도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남 밑에서 돈 번 적 없을 나경원 씨와는 다르게 대한민국의 평범한 월급쟁이들은 회사 매출 조금만 떨어져도 저녁에 퇴근할 때마나 자기의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3. 다른 요소도 아니고 경제 때문에 이명박이 천안함 사태를 무턱대고 끌고 갈 수 없다는 역설 앞에서 한명숙 씨는 속으로 쾌재를 부를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는 한명숙 씨와 그녀 주변에 포진한 친노 386들의 어리석은 착각일 수가 있다. 천안함 사태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정확히는 소비자들은, 그리고 소비자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기업들은 죽음의 냄새를 너무나 많이 맡았다. 한명숙 씨와 친노세력이 표 모은답시고 서거한 전직 대통령의 영정을 거리로 들고 나오는 순간 “지겹다.”, “그만 해라!”는 유권자들의 야유가 사방에서 쏟아질 게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장담하겠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에 즈음해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가 총대를 메고서 경건한 추모 분위기를 조성한답시고 공중파 방송사들에다가 예능 프로 결방을 독촉할 거라고.
한나라당에 머리가 돌아가는 책사가 있다면 그 요청 흔쾌히 수용한다. (그 수준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책사가 현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 예능 프로 결방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주문사항이었음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리라. 야당들은 그 후과로 말미암아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장사를 할 테고. 단일화하고서도 패배하면 저들이 또 어떤 핑계를 들이댈지 몹시 궁금하다.
‘공기무비(功基無備) 출기불의(出基不意)’라고 했다. 적이 방비하지 않은 곳을 치고, 적군이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나아가라는 손자병법의 내용이다. 모두가 정공법을 고집할 때는 변칙 작전을 사용하고, 하나같이 변칙에 열중할 때는 오히려 정공법을 구사하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다. 여당도 야당도 한결같이 변칙적 판깨기 전술로 승부하려는 지금이야말로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펼치는 지혜와 안목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한명숙 씨는 이계안 씨가 요구하고 있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통 크게 응해주는 게 현명하다. 경선자금 8천만 원이 없어서 경선 못하겠다는 것은 그녀를 무리하게 기소한 검찰의 법리만큼이나 옹색하다. 정 안 되면 골프 좋아하는 친노 정치인들한테 골프장 회원권 팔라고 부탁하면 될 것 아닌가? 참여정부 당시에 연봉 수억 원 하는 공기업 간부 자리에 수두룩하게 낙하산 타고 내려간 이른바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손을 벌리거나. 그 깨어 있는 시민들 노무현 정신 계승 위해서 이참에 돈 좀 풀라고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