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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어머니 댁에 들렀습니다. 매주 수요일이면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께서 캐나다 다녀오신 길이라, 얼굴도 뵈어야 하고, 저녁거리가 풍성하다 하시기에 아예 저녁까지 먹고 갈 참입니다.
그냥, 이리 우울합니다. 저를 둘러싼 세상은 이리도 아름답건만. 겹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거리를 장식하고, 꽃눈이 우수수 떨어져 우편물을 들고 걷는 제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건만... 이 우울함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게 하 수상하다 해도 나와 직접 관계없는 거다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도 있거늘, 그게 쉽게 되질 않습니다. 전에 제가 보았던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을까요.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보았던, 때로는 나를 실망시키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이정도 왔으면 많이 왔다는 데서 느껴지는 자부심 같은 것. 그런 것들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무너지는 것들을 보면서, 또 현 정부가 보여주는 '신뢰감의 박탈'을 보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대학 다닐 적으로 다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느끼기 때문이었을까요.
촛불 정국 때, 저는 거기서 국민들의 민도가 시위를 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보면서 전율까지도 느꼈습니다. 그것은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은 무자비한 폭력 진압 앞에서 경악으로 바뀌었고, 그때 이후로 이렇게 조국의 시계바늘도 역주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늘 공권력의 폭력이란 장치를 바닥에 깔고 기만과 협잡, 그리고 은폐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던 그 시대는 우리 옆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좋게 말하면 단순 소박한, 그저 부자되고 싶다는 꿈 때문이기도 했고, 좀더 까놓고 말하자면 그것은 분명히 '내집 가치가 상승되기만 하면 된다는 욕망'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투자한 주식값이 올라 내가 부자된다면, 그것보다 좋은게 없다는 단순한 이기적인 욕망은 이제 보다 복합적인 형태로 '그를 찍은 그들' 까지도 함께 징벌하는 셈이 됐습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나무토막을 왕으로 모시기 싫어 신에게 계속 졸라댄 개구리들의 모습이 한국의 오늘 모습입니다.
황새는 개구리들을 꿀꺽꿀꺽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 현 정부는 4대강이라는 미명하에 아무 컨센서스 없이 몰래 땅을 파헤치고, 그것을 통해 떡고물을 챙기는 것들은 앞에서는 그를 욕하고 뒤에서는 악수를 나눕니다. 꼭 낙동강과 한강의 개발에는 소리 높이는 민주당도, 금강, 영산강 쪽의 개발엔 씩 웃음을 짓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구토 차오르는 현실은 결국 사람들의 생명마저도 앗아갑니다. 그저 정당한 댓가를 받겠다고 소리높였던 용산의 영세업주들과 주민들이 불에 타 죽고, 예쁜 아가와 아내를 생각하며 물 새는 군함에서 자기 맡은 일을 묵묵히 하던 이들은 그냥 수장됐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결과는 결국 생각하는 것에 나태했던 여러분의 죄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를 찍지 않았다고 변명해도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 안에 욕심이었고, 내 주위를 돌아보지 않았던 내 이기심이 낳은 열매 없는 가시나무이고, 먹어도 먹어도 차지 않는 아귀지옥이 들어찬 내 마음의 업보일 테니까요.
이 모든 '참극'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의 희망은 우리 자신입니다. 이 참극들을 되돌려놓을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이미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것도... 결국은 '우리 자신'이며, 그것이 희망일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지금 바로 매 순간마다 절절히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