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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BBK 사건으로 궁지에 몰릴 때 ‘주어가 없다’는 절묘한 궤변을 남기고 유체 이탈했지요. 2012년 9월 이명박과의 독대에서 이를 전수받았나요? 이후 박 대통령의 언행에서 책임지는 말을 찾으려 해도 내 기억이 흐린 탓인지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두고 ‘도움 받은 적이 없다’고 잡아떼는가 하면, 수첩인사 발탁이나 국정 수행 미숙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꼬리를 자르거나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늘 아랫사람을 탓했습니다.
민경욱 대변인이 오늘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지요. 대변인이 감히 대통령의 의중과 상반되는 입장을 내놓는 경우는 없기에 이는 대통령의 뜻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대변인은 "국가안보실은 통일·안보·정보·국방의 컨트롤 타워"라면서 "지금 법령으로 보면 정부에서 이런 재해상황이 터졌을 때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부연설명 했지만, 궁지에 몰린 쥐처럼 해명이 참으로 궁색합니다. 세월호 선장의 유체이탈은 대놓고 질타해놓고, 정작 대한민국호 선장인 자신이 유체이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요.
그렇다면,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는 왜 갔을까요. 구조작업이 허둥대는 걸 보고 지휘체계를 세우러? 아니면 현장을 살펴보고 그에 따라 신속하게 대처하려? 사고 7일 째인 오늘까지 대처가 번번이 늑장인 사실을 보면 전자도 후자도 아닙니다. 모든 행정을 총괄하는 힘을 가지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 이를 한자로 풀이하면 크게(大) 통솔하는(統) 요긴한 자리(領)입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정무직 장관이 무능하면 그것은 대통령의 무능이며, 이를 극복하려면 대통령이 그만한 통찰력과 판단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공무원이 몸을 사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면 행정부 수반의 무지요,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이리도 허술한지 몰랐다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대통령은 국군의 지휘체계를 모르는 통수권자입니다. 서해평화지대 구상과 개성공단 그리고 금강산관광사업이 북한의 군대를 북쪽으로 얼마나 밀어냈는지 모르면 진정한 국방을 모르는 대통령입니다. 사대강을 보고 이 나라 생태계를 걱정하지 않으면 깨끗한 물을 마실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법부의 최종판결이 나기도 전에 대놓고 ‘살인’을 말하면 그것은 법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고가 커진 책임을 선박 직원에게 ‘독박’을 씌우려는 것은 이익집단의 유착으로 인한 부작용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는 처분입니다. 지금 이 나라 대통령은 60년 동안 딴 나라에 살았습니까?
일등공신 국정원장 남재준을 세 번씩이나 구조하느라 물에 빠진 지지율이라도 구조하려 현장으로 달려가지는 않았겠지요. 그런데 이게 어느 차원의 방정식입니까. 다음날 지지율은 최고로 올랐고 실종자는 아직까지 1%도 구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지요. 단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통솔력을 발휘해 몇 명이라도 구했다면 그런 고차방정식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데, 참 딱합니다.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것은 대한민국이며 그 선장은 박근혜입니다. 게다가 항해사, 기관사, 조타수는 박근혜 선장이 임명한 사람입니다. 서툰 항해사가 이리 변침하고 풋내기 조타수가 저리 변침하다가 금쪽같은 시간을 다 놓치자,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며 청와대 방송만 믿으면 된다고 유족에게 직접 전화하는 쇼로 국민을 안심시키다가,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배가 침몰하자 함께 책임에서 탈출하자고 모의라도 한 겁니까? 아니길 빕니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에서 우물쭈물하는 주무장관을 다그쳐 책임을 분명히 하던 대통령, 욕은 내가 먹어도 좋으니 장관은 소신껏 일하라던 대통령, 일본 순시선이 독도 영해를 침범하려 할 때 군함으로 밀어내되 그래도 안 되면 발포해도 좋다고 단호히 명령하던 대통령, 지방도 먹고 살라고 공기업을 나누어주던 대통령, 국제적 요구에 비난을 무릅쓰고 파병했으나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다가 적지에 뛰어들어 장병을 끌어안던 대통령, 그래도 준비가 부족했다며 자신의 모자람을 탓하던, 그런 대통령이 그리운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