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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가구 510만 가운데 절반 가까이 자녀를 시댁이나 처가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조부모들은 자식 공부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이제 허리 펴고 노년을 즐겨야 할 시기에 손주 키우느라 허리 펼 틈이 없다.
국립국어원은 최근 황혼육아로 육체적, 정신적 증세를 얻은 상태를 ‘손주병’이라는 신조어로 선정했다. 실제로 황혼육아 조부모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9시간, 일주일에 평균 47시간으로 나타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중노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사람들도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다 보면 지치는데, 나이와 함께 체력이 떨어진 조부모가 육아에 시달리다 보면 허리나 팔다리, 심혈관계, 우울증 등 심신 건강에 문제가 많이 생긴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으로 손주를 돌보면서 심신이 지치는 것과 함께 자녀 양육방식 등을 둘러싸고 자녀세대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더욱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양육문제로 인한 갈등은 남편이 잘못 관여했다가 부부간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
황혼육아 중인 조부모들은 ‘우유는 제 시간에 정해진 양만 먹이기’, ‘낮잠은 정해진 시간에만 재우기’, ‘유기농 음식만 고집’하는 등 책에서 본 내용을 줄줄 외며 잔소리하는 자녀 또는 며느리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고 한다. 어쩌다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자녀들은 속상해서 조부모에게 퍼붓고 화를 내니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반면 자녀들은 ‘아이를 봐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민간요법을 맹신하는 부모님이 답답하거나 아이를 너무 감싸 안고 키워서 버릇이 나빠질까봐 걱정’이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물론 손주들에게 적절한 조언과 협조를 해주는 조부모도 많지만 손주 양육에 있어서 지나친 관여는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이혼 전문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는 “아이들의 양육 주체는 부모이고, 조부모는 보조적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조부모와 부모의 양육방식이 달라 아이는 혼돈스러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가 정해놓은 규칙이 무너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엄경천 변호사는 “조부모들은 양육에 있어서 자녀세대의 독립과 그 세대 나름의 가치관을 인정해야 하며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고치고, 자녀세대 역시 자신의 진취적 태도에 비추어 사려 깊고 경험이 풍부한 조부모의 태도를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